왜 지금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야 하는가 ㅡ청람

김왕식


몇 년 전

학생들과 문학 공부하며

정리한 30여 작품 중

<그리스인 조르바>를

공유한다




선정 이유

― 왜 지금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어야 하는가





세계문학은 수많은 작품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그리스인 조르바>는 특별히 우리 시대의 독자에게 강렬한 울림을 주는 책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오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바쁘게 살아가면서도, 정작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에는 서툴기 때문이다. 효율, 성과, 경쟁, 계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자주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살아 있다는 감각보다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이 앞서고, 순간의 기쁨보다는 미래의 불안이 삶을 덮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조르바가 등장한다. 그는 규율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삶을 온몸으로 껴안는 인간이다. 노동을 하면서도 노래하고, 사랑에 빠지면서도 후회하지 않으며, 고통 속에서도 춤추기를 멈추지 않는다. 삶을 머리로만 계산하며 이론 속에 갇혀 사는 현대인에게, 조르바는 말없이 묻는다.

“너는 정말 살아 있는가?”

그의 질문은 무겁지만 동시에 유쾌하다.

왜냐하면 그는 삶의 정답을 책 속에서 찾지 않고, 매 순간의 경험 속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철학서도 아니고, 단순한 소설도 아니다. 철학보다 더 생생하게 삶을 가르치고, 소설보다 더 실제적으로 존재의 의미를 전한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한 인간의 기행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자아를 만나는 일이다.

누구나 마음속에는 자유롭고 싶지만 억눌린 조르바가 있다. 그를 깨우는 순간, 삶은 더 이상 고단한 의무가 아니라 살아 있음 자체의 축제가 된다.


따라서

이 글은 오늘의 우리에게 조르바가 왜 필요한지, 그가 던지는 삶의 본질적 물음이 어떻게 여전히 살아 있는지 밝히려는 시도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과거의 고전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절실한 현재형의 교과서이다.

그렇기에 이 글은 단순히 책을 소개하는 글이 아니라, 삶을 다시 바라보는 거울이 될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

― 자유의 춤과 존재의 본질




김왕식





시작하는 말

― 인간 존재를 묻는 문학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장편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20세기 문학사 속에서 가장 독창적이고도 강렬한 울림을 지닌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것은 단순히 한 인간의 삶을 기록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가 무엇을 향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정면으로 제기한 문학적 실험이기 때문이다. 당시 서구 사회는 이성과 합리주의, 산업화와 물질적 성취가 삶의 중심에 자리하던 시대였다. 문명은 눈부신 속도로 발전했으나, 그 안에서 인간은 오히려 더 빈곤해지고 고립되었다. 카잔차키스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머리로만 사는 인간”과 “몸 전체로 살아내는 인간”을 대비시키며, 이성과 본능, 사색과 체험, 계산과 열정 사이의 균형을 묻는다. 그 질문은 시대를 넘어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작품 속 화자인 ‘나’는 학문과 지식에 매달려 자기 존재를 글과 사유의 틀 안에서만 정리하려 한다. 그는 늘 책 속의 문장과 이론을 좇지만, 정작 살아 있는 현실 앞에서는 망설이고 주저한다.

반면 조르바는 어떠한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고 삶의 모든 순간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다. 그는 일하면서 노래하고, 슬픔 속에서도 춤을 추며, 실패와 상실마저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이 두 인물의 대비는 단순한 극적 장치가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며 반드시 마주쳐야 할 내적 갈등의 표상이다. 독자는 조르바와 화자의 대화를 통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철학서처럼 사유를 체계적으로 전개하지 않지만, 그 자체로 철학을 넘어선다. 그것은 삶을 이론이 아닌 경험으로 증명하기 때문이다. 조르바의 춤은 단순한 동작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선언이자 삶의 본질을 드러내는 상징적 행위이다. 카잔차키스는 이 춤을 통해 “살아 있음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시각적이고 감각적으로 구현해 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순간의 기쁨을 긍정하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인간답게 존재하는 방식이라는 메시지가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더 나아가 이 작품은 인간 자유의 참된 의미를 일깨운다. 자유란 단순히 외부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온전히 긍정하는 데서 비롯된다. 조르바는 삶의 크고 작은 고통을 회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껴안고 함께 살아내는 가운데 더 큰 자유를 획득한다. 그 자유는 방종이나 쾌락적 소비가 아니라, 존재의 근원에 닿는 해방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그리스인 조르바》는 니체가 말한 디오니소스적 인간상과도 맞닿아 있으며, 동시에 불교적 무아의 사상과도 닮아 있다. 인간은 죽음을 직시할 때 오히려 삶을 충만히 긍정할 수 있고, 그 긍정 속에서 자유를 얻는다.


결국 《그리스인 조르바》는 단순히 한 시대의 소설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끊임없이 던져야 할 근원적 질문의 거울이다. 그것은 “너는 정말 살아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요약된다. 이 물음은 추상적이지 않다. 노동, 사랑, 고통, 기쁨 등 삶의 모든 구체적 순간 속에서 매번 새롭게 다가온다. 오늘의 독자가 이 작품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조르바의 삶은 특별한 영웅담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잠든 또 다른 자아의 초상이다. 우리가 그 자아를 깨우는 순간, 삶은 더 이상 무겁고 피곤한 의무가 아니라 자유로운 춤이 된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 춤의 본질을 보여주는, 영원히 현재형의 문학이다.




가운뎃말

― 자유인의 초상과 철학적 대비



1. 조르바, 원초적 자유의 화신


조르바는 무엇보다 자유인이다. 그에게 자유란 제도나 규율로부터의 단순한 해방이 아니라, 자기 존재를 전적으로 긍정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그는 먹고 마시며, 사랑하고 춤추며, 노동하는 그 모든 순간을 인생의 본질로 받아들인다. 남들이 고통이라 부르는 순간조차 그는 삶의 한 부분으로 껴안는다. 예컨대 갱도 노동의 위험과 불확실성도 그에게는 절망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징표였다. 땀 흘려 일하는 육체의 고단함 속에서 그는 삶이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그 삶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지를 매번 확인한다.


조르바의 춤은 그의 삶의 가장 상징적인 언어다. 춤은 단순한 신체적 움직임을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 리듬을 드러낸다. 그는 기쁠 때 춤추고, 슬플 때도 춤춘다. 사랑을 얻었을 때도, 그것을 잃었을 때도 춤은 멈추지 않는다. 이 춤은 현실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려는 몸부림이 아니라,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행위다. 바로 여기서 조르바의 자유가 빛난다. 그는 삶을 가르는 선, 즉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 생과 사의 경계마저도 춤으로 초월한다. 이처럼 조르바는 인간이 근원적으로 지닌 본능적 리듬에 충실하며, 그 리듬을 억누르지 않고 해방시킴으로써 자유의 화신이 된다.



2. 지식인 ‘나’와의 대비 ― 머리와 몸의 대화


이 작품의 화자인 ‘나’는 조르바와 극명히 대비된다. 그는 책을 사랑하고, 문장을 탐구하며, 세상을 이론 속에서 이해하려 든다. 그러나 현실의 문제 앞에서 그는 늘 망설이고, 과도한 성찰 속에서 행동의 타이밍을 놓친다. 이러한 모습은 현대인의 자화상과도 겹친다. 정보와 지식은 넘쳐나지만, 정작 “사는 일”에 대해서는 서투른 우리의 모습 말이다.


조르바는 화자에게서 배울 필요가 없다. 오히려 화자가 조르바에게서 배운다. 그는 조르바의 거침없는 행동, 머뭇거림 없는 열정, 고통조차 긍정하는 태도에서 새로운 삶의 방향을 발견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두 인물이 단순한 대립 구도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르바는 화자에게 삶의 본질을 가르쳐주지만, 동시에 화자의 지적 세계와 대화를 나눔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더 깊이 자각한다. 이 상호 보완적 관계야말로 작품의 진정한 미학이다. 독자는 이 둘의 대비와 대화를 통해, 인간이 이성적 성찰과 본능적 충실성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지를 성찰하게 된다.



3. 조르바의 철학 ― 죽음을 넘는 삶의 긍정


조르바의 세계관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죽음에 대한 태도이다. 그는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며, 그 인식 속에서 오히려 삶을 더 강렬히 긍정한다. 그에게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을 더 뜨겁게 살도록 촉구하는 힘이었다.


조르바의 춤은 죽음을 향한 도전이자, 동시에 삶에 대한 찬가다. 갱도가 무너지고 사업이 실패해도 그는 절망에 잠기지 않는다. 오히려 땅 위에 몸을 세우고 춤을 춘다. 그 순간 춤은 단순한 움직임을 넘어, 삶이 죽음을 초월하는 역설의 형식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니체의 디오니소스적 인간상을 떠올리게 된다. 디오니소스적 인간은 삶의 고통과 죽음을 피하지 않고, 그것을 껴안으며 긍정한다. 조르바야말로 그 구현이다. 그는 삶을 계산하지 않고,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순간에 몰입하고, 지금 이 순간을 전적으로 살아낸다.


죽음을 직시할 때 비로소 삶은 충만해진다. 조르바의 태도는 이 역설을 몸으로 증명한다. 그는 사랑을 잃고, 실패를 경험하며, 늙음을 맞이하지만 결코 삶을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삶의 전체로 받아들이고, 춤과 노래로 승화한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우리에게도 커다란 물음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죽음을 떠올릴 때 어떤 자세를 취하는가? 두려움 속에 움츠러드는가, 아니면 그 인식 속에서 더욱 자유롭고 충만하게 살아가는가?



4. 현대인에게 비추는 거울


조르바는 단순한 소설 속 인물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살아 있는 거울이다. 현대인은 효율과 성과, 경쟁과 계산에 매몰되어 순간의 기쁨을 잃어버리기 쉽다. 살아 있다는 감각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이 앞서고, 불확실한 미래의 불안이 현재의 즐거움을 덮어버린다. 바로 이때 조르바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너는 정말 살아 있는가?”


그 질문은 무겁지만 동시에 유쾌하다. 왜냐하면 조르바는 삶의 정답을 책에서 찾지 않고, 매 순간의 경험 속에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에게 철학적 명제를 암송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그저 춤추고, 사랑하고, 일하고, 실패하라고 말한다. 바로 그 경험 속에서 인간은 존재의 본질을 만난다.


따라서 《그리스인 조르바》는 단순히 한 개인의 기행을 그린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인의 내면에 숨어 있는 또 다른 자아, 자유롭고 싶으나 억눌려 있는 자아를 깨우는 이야기다. 우리 안에는 여전히 조르바가 잠들어 있다. 그를 깨우는 순간, 삶은 더 이상 무거운 짐이 아니라, 살아 있음 자체의 축제가 된다.




맺음말

― 현대인의 삶에 던지는 실천적 울림



《그리스인 조르바》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실패와 상실 속에서도 춤을 춘다. 그것은 단순한 몸짓이 아니라, 삶 자체가 하나의 축제이며 죽음조차 꺾을 수 없는 인간 자유의 표징이었다. 이 장면은 작품의 종결을 넘어 우리 각자의 삶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진다. 오늘 우리는 그 물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현대 사회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풍요롭다. 첨단 기술과 정보 혁명, 물질적 편리함 속에서 인간은 수많은 선택지를 가졌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더욱 불안해지고 있다. 끊임없는 경쟁,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성과와 효율에 매몰된 삶은 우리를 쉬지 못하게 한다. 성취를 이루어도 만족은 잠시뿐이고, 곧 더 큰 욕망이 우리를 내몰아 다시 달리게 만든다. 이런 시대에 조르바의 삶은 낡은 전설이 아니라, 오히려 더 절실한 현재의 교과서가 된다.


조르바가 보여주는 첫 번째 교훈은 삶의 순간을 온전히 긍정하라는 것이다. 그는 성공과 실패, 기쁨과 슬픔을 나누어 계량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삶의 일부로 껴안는다. 현대인은 흔히 결과에 집착하며 현재를 소모한다. 그러나 조르바는 결과가 아니라 순간을 살았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불안과 강박 역시 현재를 잃어버린 탓이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을 충만히 살아내는 태도, 즉 ‘삶의 춤’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조르바가 현대인에게 던지는 첫 번째 메시지다.


둘째, 조르바는 죽음을 직시할 때 삶이 충만해진다는 역설을 보여준다. 우리는 죽음을 외면하려 애쓰며, 그 두려움 때문에 삶조차 축소시킨다. 그러나 조르바는 오히려 죽음을 친구처럼 끌어안으며 더 뜨겁게 살았다. 현대인은 장수와 안전을 위해 삶을 계획하지만, 정작 죽음을 피하려는 그 집착이 삶을 메마르게 만든다.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삶의 일부로 인정할 때 비로소 인간은 순간을 더 깊이 긍정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태도다. 매일을 마지막 날처럼 진실하게 살아가는 용기, 그것이 조르바의 춤에 담긴 지혜이다.


셋째, 조르바의 삶은 인간관계의 본질을 일깨운다. 그는 사람을 계산하거나 평가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사랑에 빠지면 온몸으로 사랑했고, 헤어짐이 찾아와도 미련 대신 감사로 떠났다. 현대 사회의 인간관계는 점점 이해타산적이고 피상적이 되어 간다. SNS의 연결은 많아졌으나, 마음을 나눌 친구는 줄어들었다. 이런 시대에 조르바가 보여주는 인간관계의 태도는 큰 울림을 준다. 사람을 결과나 효율로 재단하지 않고, 그 자체로 귀하게 받아들이는 마음. 바로 그 따뜻한 시선이 현대 사회의 냉혹한 관계망을 치유하는 길이다.


넷째, 조르바의 태도는 노동과 삶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그는 노동을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보지 않았다. 노동은 그 자체로 삶의 리듬이었고, 존재의 노래였다. 반면 현대 사회에서 노동은 종종 자기 존재를 소모하는 고통으로 전락한다. 조르바는 노동 속에서 노래하고, 땀 속에서 춤을 추며, 고단함을 삶의 일부로 긍정했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노동의 존엄을 되찾도록 일깨운다. 우리가 다시 일 속에서 자율과 창조의 기쁨을 발견할 때, 삶은 비로소 축제로 회복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조르바는 지식과 삶의 균형을 가르친다. 화자는 책 속의 지식에 매몰되어 현실 앞에서 무력했지만, 조르바는 머뭇거림 없이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이 대비는 어느 한쪽의 부정이 아니다. 두 인물은 서로를 필요로 했다. 현대 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지식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삶을 대체할 수는 없다. 경험 없는 지식은 공허하고, 지식 없는 경험은 파편적이다. 조르바와 화자의 관계처럼, 이성과 본능, 사색과 행동의 균형이야말로 현대인이 추구해야 할 길이다.


요컨대《그리스인 조르바》는 우리에게 단순히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다. 조르바는 삶을 이론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그저 살고, 춤추고, 노래하며, 죽음조차 웃음으로 맞는다. 그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과제를 남긴다. 지금 이 순간을 긍정하는가? 죽음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가? 사람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가? 노동 속에서 존엄을 찾는가? 지식과 경험을 조화롭게 살고 있는가?


오늘날 조르바의 춤은 더 이상 그리스 해변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회의실의 긴장된 공기 속에서도, 도시의 지하철 안에서도, 가정의 식탁 위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삶을 억누르는 무게를 덜어내고, 존재의 리듬을 회복할 때, 우리 모두는 자기만의 조르바가 될 수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과거의 고전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현재형의 초대장이다. 그것은 “살아 있음 자체가 축제”라는 선언으로, 오늘의 인간에게 삶을 새롭게 바라보라고 권유한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단순한 독서 체험을 넘어, 존재의 근본을 다시 확인하는 실천적 계기가 된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쫓기듯 살아가며, 때로는 자신이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조차 잊는다. 그러나 조르바는 우리에게 묻는다. “너는 지금 진정 살아 있는가?” 이 물음은 추상적 철학이 아니라,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순간부터 적용될 수 있는 구체적 삶의 과제이다. 작은 기쁨을 붙잡고, 실패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며, 사랑과 노동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조르바가 전하는 삶의 진리이다.


오늘의 독자가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한 자유인의 일화를 감상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내면에 잠들어 있는 또 다른 자아를 깨우는 작업이며, 억눌린 자유와 본능을 다시 불러내는 행위이다. 이 책은 철학적 해답을 조목조목 제시하지 않지만, 삶의 길을 가리키는 강렬한 나침반이 된다. 바로 이 점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는 여전히 현재형이며, 미래에도 살아 있을 고전이라 할 수 있다.


조르바의 춤은 우리 모두의 춤이다. 그것은 의무와 성과의 굴레를 벗고, 살아 있음 자체의 환희를 다시 느끼게 하는 몸짓이다. 우리가 그 춤을 마음속에서라도 따라 출 수 있다면, 삶은 더 이상 무거운 짐이 아니라, 자유로운 축제가 될 것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 축제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이며, 인간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문학적 교과서이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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