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산과 바다의 가르침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산은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바다는 파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작은 말 한마디에도 흔들리고, 사소한 일에도 출렁인다. 마음공부를 하려 애쓰지만, 늘 세속의 바람에 흔들려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가르침이 아니라, 흔들림 속에서도 고요한 자리를 보는 눈이다.
“起伏已勝彼, 云何爲人說敎而不取於相, 如如不動也.” 오르내림이 이미 사라져 고요에 이르렀다면, 설법조차 모양에 집착하지 않는다. 진리의 자리는 있는 그대로 여여하여 흔들리지 않는다. 바위는 비에 젖어도 본래의 모양을 바꾸지 않듯, 마음의 본성 또한 외부의 일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흔들린다고 느끼는 것은 사실 마음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위에 일어나는 파문일 뿐이다.
강물 위에 뜬 달은 물결이 일면 달빛은 흔들리지만, 하늘의 달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의 본래 마음도 이와 같다. 삶 속의 번뇌는 강물의 물결일 뿐, 그 너머의 고요는 언제나 온전히 있다. 다만 우리는 물결만 보고 달을 보지 못한다.
金剛經의 偈頌은 우리에게 다시 일깨운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모든 인연 따라 생겨난 법은 꿈과 같고, 환영과 같으며, 거품과 그림자, 이슬과 번개와도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풀잎 위의 이슬은 한순간에 증발하고, 하늘을 가르는 번개는 刹那에 사라진다. 우리가 붙잡으려는 감정과 욕망도 이와 같다.
執着은 언제나 고통을 부른다. 물거품을 보석이라 착각하는 이가 손을 내밀면, 거품은 터지고 허공만 남는다. 그것이 거품임을 아는 순간, 허망함이 고요가 된다. 삶의 성패와 득실도 그러하다. 성공을 움켜쥔다 해도 이슬과 같아 금세 흩어지고, 실패를 두려워한다 해도 번개처럼 한순간일 뿐이다.
산은 바람을 막지 않는다.
바람이 지나가면 다시 고요할 뿐이다. 바다는 파도를 내치지 않는다. 파도가 부서지면 스스로 평온해질 뿐이다. 우리의 마음공부도 마찬가지다. 흔들림을 없애려 안간힘 쓰기보다, 흔들림을 흔들림으로 알아차리고 흘려보낼 때, 마음은 저절로 제 자리를 찾는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고요를 원한다. 고요를 얻겠다는 갈망 자체가 또 다른 파문을 일으킨다. 구름을 걷어내려 애쓰지 않아도, 바람이 불면 하늘은 저절로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번뇌를 억누르지 않아도 덧없음을 바로 볼 때, 마음은 스스로 고요해진다.
흔들림 많은 일상 속에서도 이 지혜는 쓰일 수 있다. 누군가의 비난이 바람과 같음을 알면 마음은 휘청이지 않는다. 칭찬이 거품 같음을 알면 들뜨지 않는다. 기쁨과 슬픔이 모두 번개 같음을 알면, 그 찰나조차 영원처럼 깊이 누릴 수 있다. 무상함을 깨닫는 순간, 삶은 허무가 아니라 충만으로 바뀐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소나무는 뿌리 깊어 쓰러지지 않는다. 바다가 격렬히 출렁여도 深淵은 늘 고요하다. 마음도 그러하다. 파도와 바람은 잠시일 뿐, 본래의 고요는 언제나 우리 안에 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잊고 흔들림만을 자신이라 여긴다.
스스로를 나무라지 말자. 파도가 일어나야 바다도 살아 있고, 바람이 불어야 산도 숨 쉰다. 번뇌가 일어나는 순간조차 그것을 꿈과 幻影으로 관하면, 煩惱는 외려 스승이 된다. 흔들림을 통해 고요를 배우고, 무상을 통해 영원을 알게 된다.
따라서 如如不動의 마음은 세속을 떠난 도피가 아니라, 세속 한가운데서도 산처럼 서 있고 바다처럼 깊은 마음이다. 꿈과 같음을 알면서도 꿈속의 풍경을 노래할 줄 알고, 번개 같음을 알면서도 그 빛에 눈부심을 느낄 줄 아는 마음이다. 그 자리에 설 때, 우리는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자유를 얻게 된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