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 삶의 중심에 두어야 할 가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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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 삶의 중심에 두어야 할 가치




청람 김왕식





화평(和平)은 단순히 싸움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화목하고 평온하며, 온화하고 태평한 삶의 태도를 가리킨다. 또한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화해하며, 조화를 이루어 일치를 이룸으로써 유지되는 관계의 질서다. 성경은 화평을 히브리어로 ‘샬롬(Shalom)’, 헬라어로 ‘에이레네(Eirene)’라 부른다. 여기에는 단순히 외형적인 안녕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비롯되는 영원하고 참된 평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진정한 화평은 죄 사함을 통해 끊어진 관계가 회복될 때 비로소 주어진다.

우리의 일상은 이 정의와 거리가 멀다.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중하게 말하고 예의를 지키면서도, 가까이 있는 가족이나 동료에게는 도리를 다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낯선 사람에게는 조심스레 말을 아끼지만, 익숙한 이들에게는 거리낌 없이 내키는 대로 말과 행동을 쏟아내어 상처를 남긴다. 결국 진정한 화평은 집 안과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부터 깨어지기 쉽다.

가정은 사랑과 평화가 자라야 할 가장 작은 공동체다. 하지만 정작 집 안에서는 “가족이니까 이해해 주겠지”라는 생각으로 서로에게 소홀해진다. 부모는 자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녀는 부모의 수고를 당연하게 여긴다. 부부는 서로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자기 입장만 주장한다. 이처럼 가까운 관계일수록 존중과 배려가 무너지기 쉽다. 화평은 작은 예의와 섬김에서 시작된다. 가족끼리도 낯선 이에게 하듯 존중을 담아 인사하고, 사소한 말에도 따뜻한 어조를 담는 것, 해야 할 도리를 다하는 것이 화평을 세우는 첫걸음이다.

직장에서는 협력이 중요하지만, 이익과 성과 앞에서 갈등이 잦다. 동료의 공을 가로채거나, 책임을 회피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비난할 때 분위기는 삭막해진다. 화평을 이루려면 먼저 말과 태도를 바꿔야 한다. 의견이 다를 때도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들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몫을 다 감당하는 성실함이 전제되어야 한다. “내가 해야 할 것은 하지 않으면서 남이 알아서 해주겠지”라는 태도는 불화의 씨앗일 뿐이다. 작은 배려와 책임이 모여 평온한 협력의 관계를 만든다.

사회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배경과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부딪히는 곳에서는 예의를 갖춘 대화와 존중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인터넷과 SNS 속에서 얼굴을 맞대지 않고 쉽게 말과 글을 내뱉는다. 익명성 뒤에 숨어 날 선 말을 던지다 보면, 상대방의 마음을 깊이 상하게 하고 사회적 갈등을 키운다. 화평은 상대방을 향해 내뱉는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서로를 존중하는 말투, 다른 의견을 들을 줄 아는 태도가 갈등을 줄이고 평화의 자리를 넓혀간다.

화평을 지키는 삶은 단순한 도덕적 수양을 넘어선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내면의 평화에서 흘러나온다. 마음에 분노와 불안이 가득하면 언행이 거칠어지고 갈등이 생기지만, 내면에 참된 평화가 있으면 주변에도 평온이 퍼져나간다. 그러므로 화평은 바깥에서 억지로 만들기보다, 먼저 내 마음이 고요를 얻을 때 시작된다. 기도와 묵상, 자기 성찰을 통해 마음의 중심을 다잡는 일이 중요하다.

화평은 멀리 있지 않다. 가족과의 짧은 대화, 직장에서의 작은 협력, 이웃과의 사소한 친절 속에 이미 화평의 씨앗이 있다. 그것을 귀히 여기고 지켜낼 때, 우리는 세상 속에서 샬롬과 에이레네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화평은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배려와 책임을 다하며 내 안의 평화를 흘려보낼 때 이루어진다.


ㅡ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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