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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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용기 있는 말은
가장 용기 있는 말은 언제나 칼날처럼 단순하다. 화려한 문장도, 거창한 선언도 아니다. 그저 한 마디, “도와줘.” 이 말은 인간 존재의 심연에서 솟아나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가장 진실한 외침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무력함을 인정하는 일이다. 동시에 타인의 손길을 믿겠다는 고백이다. 그 간극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인간다워진다.
사람은 누구나 강인해 보이고 싶어 한다. 세상 앞에 무너지지 않고,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존재임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인생은 그 허세를 오래 허락하지 않는다. 병든 몸, 닫힌 마음, 쏟아지는 고독은 결국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자각을 요구한다. 그 순간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단순하다. “도와줘.” 이 한 마디가 무너진 성벽 위로 빛을 불러온다.
도움을 청한다는 것은 단순한 생존의 요구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선언이다. 내가 타인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는 사실, 그 손을 잡아줄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곧 삶의 의미를 지탱한다. 누군가의 “도와줘”라는 말은 그 자체로 인간 사회를 가능케 하는 최소 단위의 언어이다. 말이 닿는 순간, 두 사람의 삶이 이어지고, 고립된 섬이 다리를 얻는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이 말을 삼키며 살아왔는가. 도움을 청하는 대신 침묵을 선택하고, 고통을 스스로 감추며, 결국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든다. 도움을 요청하는 일은 나약함의 표지가 아니라, 용기의 증표다. 스스로를 드러내는 가장 용기 있는 방식은 완전한 자립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도와줘”라는 말은 또한 타인에게 건네는 신뢰의 증표다. 도움을 청하는 순간, 우리는 상대가 나를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한다. 이는 인간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신뢰의 발현이다. 이 말은 듣는 이의 마음도 흔든다. 누군가가 내 앞에서 진심으로 “도와줘”라고 말한다면,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방관자가 아니다. 나 역시 인간으로서 응답해야 할 책임을 안게 된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의 중요한 순간들은 대부분 이 세 음절과 맞닿아 있다. 태어남은 “도와줘”라는 울음으로 시작된다. 성장의 과정에서 배움을 얻을 때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도와줘”라는 눈빛을 보낸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인간은 여전히 누군가의 손길을 찾는다. 이렇게 시작에서 끝까지, 인간의 삶은 도움을 주고받는 끊임없는 교차로 짜여 있다.
오늘의 세상은 강인함을 미덕으로 내세우고, 자립을 최고의 가치처럼 포장한다. 자립만으로는 삶이 완성되지 않는다. 관계 속에서의 의존, 나눔 속에서의 연대가 있어야만 인간은 온전해진다. “도와줘”라는 말은 시대의 허위적 강인함을 넘어서는 인간적 용기의 진실이다.
결국, 이 짧은 말은 우리에게 삶의 방향을 묻는다. 도움을 청할 용기가 있는가, 도움을 건넬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두 질문은 다르지 않다. 도움을 청할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도움을 줄 줄 아는 법이다. “도와줘”라는 말은, 인간이 인간에게 건네는 가장 순수하고 가장 깊은 연대의 언어다.
너에게서 가장 용기 있는 말은 무엇이었는가. 바로 이 짧은 한마디, “도와줘.” 그것은 단순한 요청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자는 선언이었다. 이 선언은 언제까지나 삶의 본질을 비추는 가장 맑은 울림으로 남는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