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허형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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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을 닦으며 - 공초 14
시인 허형만
새로이 이사를 와서
형편없이 더럽게 슬어 있는
흑갈빛 대문의 녹을 닦으며
내 지나온 생애에는
얼마나 지독한 녹이 슬어 있을지
부끄럽고 죄스러워 손이 아린 줄 몰랐다
나는, 대문의 녹을 닦으며
내 깊고 어두운 생명 저편을 보았다.
비늘처럼 총총히 돋쳐 있는
회한의 슬픈 역사 그것은 바다 위에서
혼신의 힘으로 일어서는 빗방울
그리 살아온
마흔세 해 수많은 불면의 촉수가
노을 앞에서 바람 앞에서
철없이 울먹였던 뽀얀 사랑까지
바로 내 영혼 깊숙이
칙칙하게 녹이 되어 슬어 있음을 보고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온몸으로 온몸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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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만 시인 주요 약력 :
1973년 『월간문학』(시), 1978년 『아동문예』(동시) 등단. 국립목포대학교 인문대학장, 교육대학원장 역임. 중국 옌타이대학 명예교수 역임. 세계 인명사전 『WHO’S WHO IN POETRY and POETS’』 등재. (사)한국가톨릭문인협회 이사장,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장, 국제펜한국본부 인권위원장, 목포문학상 운영위원장, 편운문학상 운영위원장, 영랑시문학상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역임. 영랑시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한국예술상, 펜문학상, 공초문학상 등 수상. 현재 국립목포대학교 명예교수. 국제펜한국본부 자문위원 겸 심의위원장.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녹을 닦으며> 수록. 「겨울 들판을 거닐며」 광화문 글판 베스트에 선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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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만 시인은
신작 시집 20권과 시선집 9권을 비롯해 수필 평론 연구서 등 다양한 장르의 저작을 발표하며 폭넓은 문학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작품은 국내 교과서와 광화문 글판에 실렸을 뿐 아니라 중국 일본 프랑스 대만 파키스탄 알바니아 베트남 스페인 등 여러 나라에 번역 소개되어 한국 서정시의 미학을 널리 알리고 있다. 또한 전국 각지에 시비와 목판이 다수 세워져 지역과 시대를 아우르는 시적 울림을 남기고 있으며, 한국시인협회상을 비롯하여 여러 주요 문학상을 수상하며 그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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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형만 시인의 시 〈녹을 닦으며〉
ㅡ녹을 닦으며, 삶의 부끄러움을 닦아내는 시의 노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허형만 시인의 《녹을 닦으며》는 한 편의 시라기보다, 한 인간이 자기 영혼의 표면을 정직하게 닦아내는 ‘참회록’에 가깝다.
시는 늘 거창한 사건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외려 형편없이 더럽게 슬어 있는 대문 하나, 그 녹을 닦는 손의 고통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허형만 시인은 그 단순한 노동을 단순한 청소로 끝내지 않는다. 대문에 붙은 녹을 닦는 순간, 그는 자신의 생애에 쌓여 있던 지독한 녹을 동시에 발견한다.
이 시의 첫 문장은 그 자체로 윤리적 고백이며 존재론적 통찰이다.
“부끄럽고 죄스러워 손이 아린 줄 몰랐다”는 진술은 육체의 감각을 넘어, 인간의 내면이 느끼는 깊은 통증을 드러낸다. 이 시는 여기서 이미 인간의 본질을 겨눈다. 삶이 남긴 흔적은 결국 마음에 녹이 되어 쌓이며,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순간 사람은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진다.
시인 허형만 시의 미의식은 언제나 ‘언어의 절제’ 속에서 빛난다. 과장된 감탄이나 허세가 없다. 대신 정직한 관찰이 있다. 이 시에서 ‘대문’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바깥과 안을 가르는 경계이며, 시간과 기억이 붙어 있는 얼굴이다. 새로 이사 온 삶의 출발점에서 그는 먼저 대문을 닦는다.
그러나 그 손길은 결국 자기 내부를 향한다. 허형만 시인은 사물을 통해 곧바로 인간의 심연으로 내려간다. 이것이 그가 서정의 중진으로 남는 이유다.
그는 감정을 멋으로 만들지 않는다. 감정을 죄책감과 회한의 윤리로 끌고 간다.
‘나는’이라는 고백이 흔하디 흔한 1인칭의 독백이 아니라, 삶을 정직하게 결산하려는 태도가 되는 순간, 시는 단숨에 깊어진다.
둘째 연에서 “내 깊고 어두운 생명 저편”이라는 구절은 허형만의 시학이 어디까지 내려가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삶의 빛나는 표면이 아니라, 생명의 저편, 어둠의 바닥을 본다. 그곳에는 “비늘처럼 총총히 돋쳐 있는 회한의 슬픈 역사”가 있다. 회한이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피부처럼 덮여 있는 ‘비늘’로 형상화되는 순간, 인간은 자기 삶을 피할 수 없게 된다. 회한은 씻겨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몸에 붙어 자라난다.
허형만 시인은 이 잔혹한 사실을 미학으로 감싼다. 그리고 그 회한의 역사를 “바다 위에서 혼신의 힘으로 일어서는 빗방울”로 바꾼다.
여기서 허형만 시인의 서정이 가진 위엄이 나온다. 그는 절망을 더 절망으로 밀어 넣지 않는다. 회한 속에서도 생이 다시 일어서려는 미세한 의지를 포착한다. 빗방울은 작지만, 혼신의 힘으로 일어선다. 시인은 작은 생명감의 떨림을 통해 인간을 다시 살린다.
셋째 연에서 시는 더욱 구체적이며 잔인할 만큼 솔직해진다. “마흔세 해”라는 숫자는 단순한 시간 표시가 아니라, 생애의 무게다. 그 시간 속에 “수많은 불면의 촉수”가 있다. 허형만 시인의 불면은 감상적 슬픔이 아니다. 그것은 삶이 남긴 찌꺼기들이 밤마다 촉수처럼 뻗어 와 마음을 건드리는 형벌이다.
그 형벌의 한가운데에는 “철없이 울먹였던 뽀얀 사랑”도 포함된다. 사랑조차 깨끗한 빛이 아니라, 뒤늦게 부끄러움으로 돌아오는 기억이 된다. 허형만 시인은 사랑을 미화하지 않는다. 사랑의 순수함조차 시간이 지나면 회한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있음을 인정한다.
여기에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인의 깊은 윤리적 시선이 있다. 삶을 예쁘게 꾸미지 않고,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 그것이 허형만 시인의 가치철학이다.
마지막에서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 온몸으로 온몸으로 문지르고 있었다”는 반복은 이 시의 심장이다. ‘녹을 닦는 일’은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몸으로 치르는 작업이다. 인간이 자기 죄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벗겨내는 일은 마음속 결심으로 끝나지 않는다. 때로는 손이 부르트도록, 온몸이 닳도록 삶을 다시 문질러야 한다. 허형만 시인은 그 고통을 피하지 않는다. 외려 시는 고통을 통해 정화의 길로 들어선다. 그래서 이 시는 우울한 고백이면서도, 결국은 구원의 몸짓이 된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다. 서울오산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시절, 학생들에게 이 시를 읽히고 함께 토론했을 때 교실의 공기가 달라졌던 기억이 있다. 대문의 녹이라는 소박한 사물이, 어느새 자신의 마음과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거울이 되었기 때문이다. 학생들도 이 시를 좋아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허형만 시인의 언어가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깊고, 꾸미지 않으면서도 아프도록 진실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때는 그 시인을 만나고 싶었다. 멀리서만 바라보던 이름이 있었다. 그런데 기적처럼, 허형만 시인과 '이어도문학' 심사위원으로 한 자리에 앉게 되었다. 시 속에서만 존재하던 사람이 현실의 자리에서 함께 숨 쉬는 순간이었다. 문학이란 결국 이런 순간을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말이 삶을 만나고, 텍스트가 인간을 만나는 순간. 그날 이후 허형만 시인은 내게 ‘한 명의 시인’이 아니라, 삶의 태도로서의 스승이 되었다.
《녹을 닦으며》는 결국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생애에는 얼마나 지독한 녹이 슬어 있는가.
그 녹을 닦아낼 용기가 있는가.
손이 아릴 만큼 정직해질 준비가 되어 있는가.
허형만 시인은 시로 그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먼저 그 답을 살아 보인다.
해서,
그의 시는 아름다운 동시에 두렵고, 조용한 동시에 강하다.
이 시 한 편은 인간이 인간을 다시 정화하는 길을 보여주는, 서정의 가장 깊은 자리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