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도 문학상 심사 소회 ― 시와 삶의 겸허한 빛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이어도 문학상 심사 과정 ㅡ 왼쪽 이희국 회장, 가운데 필자, 오른쪽 모자 쓴 분 허형만 시인








이어도 문학상 심사 소회
― 시와 삶의 겸허한 빛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어도 문학회는 단순한 문학 단체가 아니다. 그것은 바다 깊은 곳에 잠든 신화와 민족의 기억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하나의 거대한 의지의 결집체다. 그 한가운데 이희국 회장이 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그의 발자취는, 외부의 조명을 받지 않았으되 뿌리처럼 문학회를 지탱해 왔다. 이어도 문학상이 오늘의 자리에 닿기까지, 그의 헌신은 바다 밑에서 섬을 떠받치고 있는 암반과 같았다. 이번 심사 과정은 그 진실을 다시금 일깨워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예심을 거쳐 본선에 오른 열일곱 편의 작품은 모두 바다의 결을 품은 수작秀作이었다. 그 시편들은 단순한 풍경 묘사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와 정체성, 그리고 존재의 근원을 파도처럼 밀어 올렸다. 시인들의 언어는 서로 다른 파도의 무늬처럼 각기 달랐으나, 그 너머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난 것은 삶을 향한 정직한 눈빛이었다. 문학은 결국, 바다의 심연처럼 깊고, 파도의 떨림처럼 동일한 울림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심사의 자리는 언제나 무겁다. 누군가의 시를 평가한다는 것은 곧 그의 삶과 영혼을 함께 읽어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뜻밖에도 이번에는 심사위원들 간에 큰 이견이 없었다. 눈길과 마음이 서로를 닮아 있었고, 작품을 바라보는 기준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는 시가 지닌 본질적 힘, 곧 언어의 진실성이 결국 같은 울림으로 우리를 묶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내 마음을 깊게 울린 것은 허형만 시인과 함께한 자리였다. 그는 위원장의 자리에 있었으되, 조금도 권위를 드러내지 않았다. 외려 더없이 겸손하게, 따뜻한 물살처럼 대화를 이끌었다. 그 인품은 작품만큼이나 빛났고, 시와 삶이 둘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나는 서울 오산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교편을 잡던 시절, 교과서에 실린 그의 시 〈녹을 닦으며〉를 가르치며 학생들과 함께 큰 감동을 받았다. 그 시에는 역사적 양심과 자기 성찰이 격렬히 부딪히며 반짝였고, 나는 그것을 학생들에게 삶의 좌표로 삼으라 일러주곤 했다. 그와 나란히 앉아 심사를 나눌 수 있었던 일은 내게 하나의 영광이자, 인생의 잊히지 않을 장면이 되었다.

기억에 남는 작품 중에는 캐나다에서 온 한 여류 시인의 장편 서사시가 있었다. 그 시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부려 쓴 기록이었다. 시란 결국, 삶을 버티고 견디며 몸으로 흘려낸 피와 같은 것임을, 그녀는 몸소 증언하고 있었다.

다시 묻는다. 시란 무엇인가. 그것은 기교의 장식이 아니다. 언어의 겉치레가 아니라, 내면을 정직하게 열어 보이는 용기다. 좋은 시는 기술적 완성보다 진심의 깊이에서 비롯되며, 그 진심은 독자의 가슴에 오래 울린다. 따라서 심사는 평가가 아니라 공명이다. 시와 심사자가 공명하고, 다시 독자와 시가 공명하며, 그 울림이 문학의 생명력을 이어간다.

이번 심사는 내 삶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했다. 시인들의 언어를 읽으며, 나 역시 오래 닦아내지 못한 마음의 녹을 떠올렸다. 허형만 시인의 작품처럼, 누구에게나 생애의 구석에는 부끄러움과 회한이 녹처럼 남는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손가락이 부르트도록 닦아내려는 태도일 것이다. 문학은 바로 그 끝없는 닦아냄의 행위와 닿아 있다.

이희국 회장의 헌신, 허형만 시인의 겸허, 그리고 시인들의 온몸을 던진 기록. 그것이 이번 심사의 진정한 결실이었다. 문학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이며, 시는 서로의 영혼을 닦아내는 손길이다. 이어도라는 신비로운 섬을 매개로 모인 시인들의 언어 속에서, 나는 문학이 우리에게 왜 필요한가를 다시 확인했다. 그것은 삶의 녹을 닦아내고, 역사의 어둠을 비추며, 상처 입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힘 때문이다.

이번 이어도 문학상 심사는 내게 다시금 배움을 주었다. 좋은 시는 작품의 완성도에서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인품과 태도 속에서 빛난다는 것을. 시와 삶은 둘이 아니며, 문학은 결국 사람됨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허형만 시인의 겸손과 배려는 그 진실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문학은 언어의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품성에서 출발한다는 사실. 그 깨달음이야말로 이번 심사가 내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이었다.

―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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