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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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대의 짧은 언쟁
마트의 계산대 앞은 늘 작은 전쟁터 같다.
카트와 장바구니가 줄을 서고,
사람들의 표정은 바쁘고 예민하다.
시간은 늘 부족하고,
순서는 엄격하게 지켜져야 한다.
그날도 그랬다.
몇 명이 줄을 서 있었고
한 어르신이 천천히 물건을 꺼내고 있었다.
장바구니 속에는 사소한 것들이 많았다.
두부 한 모, 사과 몇 알, 작은 생필품.
손놀림은 더뎠고, 계산대 위에는
물건이 하나씩, 천천히 올려졌다.
뒤에 서 있던 젊은 남성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였다.
“왜 이렇게 늦으세요?
뒤에 사람 많은 거 안 보이세요?”
공기는 삽시간에 차가워졌다.
어르신은 움찔하며
손을 멈추었다.
계산대 직원조차 순간 멍하니 굳어버렸다.
순간, 줄에 있던 한 여성이 말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되잖아요.
왜 큰소리세요?”
그 말에 젊은 남성은
더욱 격앙되었다.
“내 시간이 왜 이렇게 낭비돼야 합니까?”
잠깐의 정적,
사람들의 시선은 서로에게 흩어졌다.
어르신은 더 서둘러 물건을 올리려 했으나
오히려 손이 떨렸다.
작은 두부 하나가 떨어져
바닥에 굴러갔다.
그 순간, 줄에 있던 다른 이가 재빨리 주워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작은 동작이었지만
그 안에는 묵묵한 위로가 담겨 있었다.
젊은 남성은 여전히 불편한 기색이었으나
그 이상 소리를 높이지는 못했다.
어르신은 계산을 마치고
작게 허리를 숙이며 물건을 챙겼다.
그 뒷모습은
작은 언쟁 속에 더 작아 보였다.
짧은 사건이었지만
나는 오래 생각에 잠겼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누군가에게는
조금 느린 시간이 필요하다.
그 느림이 우리에게 불편으로 다가오지만,
그 속에는 세월의 무게가 담겨 있다.
젊음은 빠름을 자랑으로 여기고,
늙음은 느림을 숙명처럼 감당한다.
그 둘이 마주치는 곳이 계산대였다.
서로의 속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
갈등은 생겨난다.
인내는 길지 않았다.
고작 몇 분, 길어야 몇 초.
그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쏟아낸 말은
어르신의 가슴에
길게 남는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언젠가 느려질 것이다.
손이 둔해지고,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시간 앞에서 무력해질 날이 올 것이다.
그날 우리 역시
누군가의 조급한 시선을 받게 될지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조금 더 참는 것이 옳지 않은가.
조금 더 기다려주는 것이
곧 내 미래를 받아들이는 일이 아닐까.
계산대 앞의 짧은 언쟁은
작은 갈등이었지만,
그 속에는 세대와 시간,
인내와 이해의 문제가 겹겹이 숨어 있었다.
그날 이후
계산대 앞에 서면 마음을 다잡는다.
조금 늦어도 괜찮다고.
조금 기다려도 된다고.
그 기다림이 곧 나의 연습이며,
언젠가 내가 누군가에게 받을 배려이기도 하다고.
짧은 언쟁은 오래 남았다.
그것은 나에게 물었다.
“너는 기다릴 줄 아는가.
너는 느림을 존중할 줄 아는가.”
대답 대신,
나는 마음속에 다짐을 새겼다.
작은 순간이 큰 배움이 되었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