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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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떠나고 싶은 가을
시인 청민 박철언
잠 못 이루던 긴 무더위 지나가고
길가 풀잎 위 투명한 눈빛으로 앉은 이슬
선선한 새벽바람에 창문을 닫는다
이제야 가을이 온 걸까
높아진 파란 하늘에 흰 구름 두둥실
다시 시작된 풀벌레들의 연주
황갈색으로 변해가는 거리
익어가는 과일처럼
그리운 사람과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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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민 박철언의 시 '함께 떠나고 싶은 가을'읽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 '함께 떠나고 싶은 가을'은 계절의 기록을 넘어선다. 그것은 법조인의 엄정한 삶 속에서도 지켜온 시인의 내면 풍경이며, 꺼지지 않은 서정의 불빛이다.
긴 여름의 고단함이 투명한 이슬로 씻겨 내려가고, 높아진 하늘과 풀벌레 소리 속에서 인간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시는 계절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삶의 기운을 섬세하게 전한다.
청민 시인의 문학적 뿌리는 경북고교 시절 청맥회 활동에서 시작되었다. 단순한 취미가 아닌 치열한 언어 훈련과 성찰의 자리였다.
이후 서울법대에 진학해 고시 공부를 하는 와중에도 독일문학회를 통해 외국 문학을 접하며 그의 시적 세계는 더욱 깊어졌다. 서정적 감수성과 이성적 탐구가 조화를 이루는 토대가 이때 마련되었다.
법조인과 공직자로 살아온 시간은 규율과 책임을 요구했다. 그의 시에는 늘 따뜻한 인간성과 자연의 결이 살아 있다.
이는 모순이 아니라 균형이다. 법과 제도가 인간을 구속한다면, 문학은 인간을 해방시킨다. 청민 시인은 이 두 세계를 함께 품으며, 인간의 삶을 법과 시의 두 축 위에서 성찰해 왔다.
'함께 떠나고 싶은 가을'은 그저 계절의 감상이 아니다. 황갈색으로 변한 거리, 익어가는 과일 같은 풍경 속에서 시인은 ‘그리운 사람과 떠나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다. 그것은 여행의 욕망이 아니라, 인간이 본래 지닌 동행의 갈망이다. 홀로 걸어야 했던 순간들을 넘어, 함께함으로써 삶을 충만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그의 작품은 두 가지 결을 지닌다. 하나는 일상에서 이끈 사실성, 다른 하나는 그것을 넘어선 보편성이다.
풀잎 위 이슬 한 방울에서 인간의 고단한 삶을 읽고, 새벽바람 속에서 시간의 흐름과 덧없음을 감각한다. 그 모든 것을 희망으로 바꾼다. 떠남은 도피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의 서곡이 된다.
청민 시인의 시는 절제된 언어 속의 풍요로움으로 특징지어진다. 불필요한 수사는 배제되고, 간결한 표현 속에 삶의 무게가 담긴다.
이는 법조인으로서의 논리적 훈련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의 시는 차갑지 않다. 이성 위에 세워진 감성, 질서 위에 피어난 자유가 그의 시를 따뜻하게 만든다.
'함께 떠나고 싶은 가을'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 지향을 보여준다. 자연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소중한 타자와 길을 동행하고자 하는 마음. 그것이 그의 삶의 가치철학이다. 법과 문학, 질서와 자유, 규율과 서정의 균형. 그 길 위에서 그는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식을 찾았다.
청민 박철언 시인의 시는 우리에게 말한다. 계절이 바뀌듯 삶도 새로워질 수 있다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떠날 때 비로소 삶이 충만해진다고.
이 믿음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공적 삶 속에서도 서정의 빛을 지켜온 그의 존재 자체에서 힘을 얻는다.
이 시는 가을 풍경을 넘어,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성찰의 노래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