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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은 돌일 뿐이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돌은 돌일 뿐이다





돌은 늘 삶의 길 위에 놓인다. 어떤 이는 그것을 디딤돌이라 부르고, 또 다른 이는 걸림돌이라 부른다. 정작 두 돌은 동일한 물질, 동일한 크기, 동일한 자리에 놓여 있을 뿐이다. 문제는 돌 자체가 아니라, 그 돌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는 시선에 달려 있다. 오래도록 우리는 돌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만 여겨왔다. 넘어지더라도 반드시 일어서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걸림돌을 억지로 디딤돌로 바꾸려 애써온 것이다. 과연 모든 돌이 반드시 밟고 지나야 할 대상일까.

디딤돌은 밟아야 길이 열린다. 걸림돌은 밟을 수 없기에 오히려 길을 가로막는다. 무서운 것은, 분명 디딤돌이라 믿고 올랐던 돌이 어느 순간 걸림돌로 돌변하는 경험이다. 목표를 향해 힘차게 발을 디뎠는데, 그 돌이 균형을 잃게 하여 쓰러뜨린다면 얼마나 황당한가. 인생은 이처럼 불확실하고, 그 불확실성이 때때로 인간을 더욱 지치게 한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삶은 무엇일까. 단순히 걸림돌을 디딤돌로 바꾸려는 힘겨운 투쟁만이 답은 아닐 것이다. 왜 우리는 늘 인생을 ‘극복의 역사’로만 만들려 하는가. 모든 고통을 반드시 이겨내야 한다는 강박은, 결국 삶을 끊임없는 전쟁터로 만든다. 인생은 전쟁터만이 아니다. 때로는 평화로운 들길이며, 고요한 숲길이기도 하다.

돌을 피하는 길, 돌이 없는 흙길을 찾아가는 지혜야말로 새로운 시각이다. 바람 앞에 굳이 맞서 싸우지 않고, 바람이 멎을 때까지 기다릴 수도 있다. 파도를 거슬러 오르려 안간힘을 쓰기보다, 파도가 잦아든 후 고요히 건너는 길도 있다. 삶의 고통을 무조건 극복하려 애쓰기보다, 고통을 최소화하며 스스로를 지키는 길, 그것이 진정한 지혜의 길이다.

물론 고통은 삶에서 피할 수 없는 한 부분이다. 고통을 줄이는 선택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욕망을 줄이면 불필요한 경쟁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다. 성급한 집착을 내려놓으면, 돌을 밟아 오르려다 발목을 다치는 일도 줄어든다. 외려 삶의 속도를 늦추고, 발밑의 흙길을 찾을 때 비로소 걸림돌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

돌 없는 길은 어쩌면 유토피아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한다. 남의 궤적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만의 리듬으로 사는 이들에게 그 길은 열린다. 비교와 경쟁의 거친 돌길을 떠나, 소박한 흙길 위에서 삶을 새롭게 노래할 수 있다. 그 길에서는 돌을 극복해야 할 필요가 없다. 이미 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삶은 반드시 투쟁의 서사일 필요가 없다. 돌을 밟고 일어서려는 집념도 때로는 위대하지만, 애초에 돌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지혜는 더 단단하다. 고통을 줄이는 선택, 평화를 택하는 지혜, 그것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삶의 공부다. 인생은 끊임없는 투쟁의 연대기가 아니라, 지혜로 고통을 최소화하며 살아가는 성찰의 기록이어야 한다.

오늘도 길 위에 돌은 놓여 있다. 이제는 그것을 억지로 밟고 오르려 애쓰지 말자.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는 눈을 기르고, 흙길을 걸을 수 있는 마음을 갖자. 그때 비로소 인생은 걸림돌이 아닌, 고요히 이어지는 흙길의 노래로 바뀔 것이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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