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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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의 무게
모든 일에는 반드시 시작이 있다. 시작은 단순한 출발점이 아니다. 그것은 전체를 결정짓는 기초이며,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토대다. 작은 일에서 큰 일에 이르기까지, 처음이 바로 서야 그 뒤의 모든 과정이 질서와 의미를 가진다.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첫 단추를 바르게 꿰어야 한다”는 말을 지혜의 교훈으로 삼아왔다. 단추 하나가 삐뚤어지면 마지막까지 어긋나듯, 인생의 많은 일도 출발이 바로 서지 않으면 도중에 아무리 애를 써도 흐트러진 균형을 바로잡기 어렵다.
자연 역시 이 진리를 증언한다. 거미가 집을 지을 때, 공중에 첫 줄을 걸어 놓는 장면을 보라. 그 줄이 약하면 거미는 미련 없이 끊어 버리고 다시 튼튼한 줄을 친다. 허술한 토대 위에 정교한 집을 세울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이다. 미물인 곤충조차 처음의 무게를 아는 데, 하물며 인간이 하는 일에 있어 그 중요성을 어찌 가벼이 여길 수 있겠는가.
처음은 언제나 두렵다. 익숙하지 않은 길 앞에서 우리는 망설이고, 혹은 서둘러 잘못된 방향으로 발을 내딛기도 한다. 바로 그 순간이 가장 큰 힘을 품고 있다. 단단한 마음가짐, 분명한 원칙, 올곧은 의지가 첫걸음을 지탱한다. 그것이 없다면 길은 금세 뒤틀리고, 작은 균열은 시간이 갈수록 큰 틈이 된다. 반대로 출발이 단단하면, 이후의 과정에서 부딪히는 어려움조차 토대 위에서 견딜 수 있다.
삶의 많은 실패는 끝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대개는 시작에서의 방심, 원칙을 세우지 못한 선택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도 처음을 바로 세우지 못하면 그 빛을 잃는다.
하여, 현명한 사람은 일을 서두르지 않는다. 먼저 바탕을 다지고, 단단히 첫 줄을 세운다. 그 시작은 더디 보이지만, 결국 가장 멀리 가는 길이 된다.
처음을 잘못 두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거미가 약한 줄을 끊고 다시 걸 듯, 인간도 잘못된 시작을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잘못을 고치지 않고 억지로 이어가면 더 큰 무너짐을 부른다. 다시 시작할 용기, 처음을 바로잡는 지혜가 인생을 바로 세운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출발이 아니라, 바른 출발을 향해 기꺼이 돌아설 줄 아는 태도다.
처음은 단순히 ‘첫 번째’가 아니다. 그것은 전체를 관통하는 방향을 정하는 힘이다. 씨앗이 땅에 뿌려지는 순간이 나무의 생을 예비하듯, 작은 단추 하나, 거미의 첫 줄 하나가 전체를 책임진다. 인간의 삶 역시 그러하다. 오늘의 첫걸음, 오늘의 첫마디, 오늘의 첫 생각이 내일의 전체를 규정한다.
우리는 언제나 처음 앞에서 겸허해야 한다. 작은 시작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한 번의 출발을 가볍게 넘기지 말아야 한다. 단추를 바르게 꿰듯, 거미가 줄을 단단히 치듯, 우리의 삶도 처음을 바로 세울 때 온전한 길을 걷게 된다.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