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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공부 중독자는 없을까?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왜 공부 중독자는 없을까?




중독이라는 단어는 대개 부정적 맥락에서 사용된다. 게임중독, 도박중독, 알코올중독이 그러하다. 그것들은 삶의 균형을 깨뜨리고, 자율을 상실하게 만들며, 결국 인간의 존엄을 해치는 병리적 상태다.
사회에서 긍정적으로 장려되는 행위, 이를테면 공부에는 ‘중독’이라는 표현이 거의 쓰이지 않는다.

왜 공부에는 중독이 없을까?

우선 공부는 본질적으로 자기 계발과 성장을 지향한다. 인간의 이성이 사유를 통해 확장되는 과정은 문명을 진보시켜 온 동력이었다. 때문에 공부에 몰두하는 모습은 흔히 칭찬의 대상이 되고, ‘중독’이라는 낙인 대신 ‘열정’이라는 긍정적 언어로 포장된다.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무엇이든 지나치면 폐해가 따른다. 공부 또한 예외일 수 없다.

실제로 학업에 지나치게 몰입하다가 건강을 해치거나, 사회적 관계를 끊어버리거나, 삶의 균형을 잃는 경우는 적지 않다. 우리는 이런 모습을 굳이 ‘공부 중독’이라 부르지 않는다. 이는 공부가 곧 성공과 연결되고, 지식이 곧 경쟁력이라는 사회적 가치관 때문일 것이다. 공부의 과잉조차 미덕으로 포장되는 까닭이다.

공부가 중독처럼 작동한 사례는 분명 존재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철학자 칸트다. 학창 시절 그는 공부에 몰입한 나머지 도시락이 사라진 줄도 몰랐다고 한다. 친구들이 그의 도시락을 몰래 장난으로 먹어치웠다. 순간, 도시락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는 잠시 생각하다가

“아, 내가 이미 먹었구나”

갸우뚱한 뒤 곧장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웃음 섞인 일화이지만, 동시에 공부가 한 사람의 삶 전체를 어떻게 압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일화는 우리에게 묘한 질문을 던진다. 공부에 몰입한 칸트의 모습은 위대한 철학자의 열정으로 기억되지만, 다른 중독들과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를까? 게임에 몰두해 밥을 거르는 것과, 공부에 몰두해 밥을 잊는 것은 결과적으로 동일한 삶의 불균형이다. 다만 공부는 인류의 지적 성취와 문명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해석되고, 게임이나 도박은 파괴와 손실을 낳는다는 점에서 부정적으로 규정될 뿐이다. 차이는 행위 그 자체보다 사회적 맥락과 결과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왜 공부 중독자는 없을까?”라는 물음은 단순히 언어의 문제를 넘어선다. 우리가 특정 행위를 어떻게 규정하느냐는 사회가 지닌 가치관의 반영이다. 공부는 분명 인간을 성장시키는 힘이다. 그것이 삶 전체를 잠식하고 인간성을 고갈시킨다면, 그때는 중독이라 불러야 한다. 공부가 진정한 빛이 되려면 균형 속에서 피어나야 한다.

공부의 가치는 양이 아니라 방향에 있다. 강박적 축적이 아니라 자유로운 탐구, 명예를 위한 집착이 아니라 성찰을 통한 확장. 공부가 자유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될 때, 그것은 중독이 아니라 삶을 밝히는 지혜의 등불로 남는다.

“삶을 갉아먹는 공부는 중독이고, 삶을 확장하는 공부는 자유다. 차이는 양이 아니라 방향에 있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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