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배우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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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라 해서 모두 소중한 것은 아니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인연을 끊는 것은 차가움이 아니라 내 삶을 지키는 용기다.”
어느 배우의 一喝이다.
이 한마디는 단순한 인간관계의 절연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감당해야 할 선택의 무게를 일깨운다.
관계는 따뜻함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삶의 중심을 흔들고 생을 갉아먹는 독이 되기도 한다. 문제는 차가움이 아니라 자기 보존이다. 살아남기 위한 결단은 언제나 용기의 다른 이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연을 끊는 행위를 냉혹한 태도, 정 없는 처사로 오해한다. 실제로 그것은 무심한 거절이 아니라 자신을 소멸시키지 않기 위한 절박한 몸부림일 때가 있다. 타인의 그늘 아래서 자신을 잃고, 끝없는 희생 속에서 자존이 무너질 때, 관계는 더 이상 사랑과 신뢰의 울타리가 아니라 감옥이 된다. 그러한 순간에 필요한 것은 미련을 움켜쥐는 끈기가 아니라, 미련을 놓아버릴 수 있는 단호한 결단이다.
인연을 끊는다는 것은 단순히 거리를 두는 일이 아니다. 그 안에는 자기 성찰이 전제된다. 왜 이 관계가 나를 힘들게 하는지,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을지를 냉정히 따져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감정적 충동으로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성찰 끝에 내 삶을 온전히 지키기 위한 도리로서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연의 절단은 잔혹한 칼날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는 방패다.
용기란 언제나 고독과 맞닿아 있다. 인연을 끊고 난 후의 공허는 감당하기 어렵다. 그 고독은 새로운 자유의 다른 얼굴이다. 외부의 억압에서 벗어난 자리에는 비로소 자기 목소리가 들리고, 그 목소리를 따라 자기 다운 삶이 시작된다. 진정한 관계는 서로를 갉아먹는 동아줄이 아니라, 각자의 뿌리를 튼튼하게 지탱하는 두 나무처럼 서 있어야 한다.
배우의 이 一喝이 울림을 주는 이유는, 많은 이들이 여전히 관계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는 끊지 못한 인연이 마음의 병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평생의 후회가 된다. 그러나 단호한 결단으로 관계를 정리한 이는 결국 자신을 지켜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삶의 주인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하여, 인연을 끊는 행위는 결코 차갑지 않다. 외려 가장 뜨겁게 자기 삶을 사랑하는 태도일 수 있다. 그것은 상대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내린 사랑의 다른 표현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관계 속에서 흔들리지만, 그 모든 흔들림 속에서 궁극적으로 지켜야 할 것은 자기 삶의 무게다. 그 무게를 지켜내는 순간, 인연의 단절은 차가움이 아니라 존엄한 용기로 남는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