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닿는 곳에서》 ― 절망의 끝에서 피어난 신의 빛
■ 청람 김왕식 소설
《빛이 닿는 곳에서》
― 절망의 끝에서 피어난 신의 빛
제1부 〈어둠의 계단〉
그는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어둠 속에서 울었다. 산파의 거친 손바닥이 등줄기를 두어 번 내리치자 축축한 공기가 가슴으로 밀려들었고, 울음은 터졌으나 눈꺼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낙네들이 부엌에서 끓이던 미역국 냄새, 젖은 이불에 밴 비누냄새, 장독대에서 돌아온 장맛의 묵직한 냄새가 한꺼번에 코끝을 치고 지나갔다. 산파는 등을 펴고 한숨을 길게 뱉으며 말했다. “아이가… 눈이 보이지 않아요.” 그 말 한 줄이 방 안의 공기를 금방 식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양쪽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으며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 했지만, 소리의 끝이 떨리는 걸 자신도 알았다.
그의 이름은 한결이었다. 어머니는 이름을 부를 때마다 ‘결’ 자를 조금 길게 끌었다. “한—결아.” 그 길이가 어머니의 믿음의 길이 같았다. 보지 못하는 대신 그의 귀는 비정상적으로 민감해졌다. 비가 오기 전날 밤, 대기 속에서 눅진하게 불어오는 냄새만으로 그는 이른 새벽 처마 끝 물방울의 모양을 상상할 수 있었다. 마룻바닥 틈새로 바람이 빠져나갈 때 나는 얇은 휘파람 소리, 살림살이에서 나는 미세한 긁힘, 새벽 첫차의 브레이크가 골목 모퉁이에서 밀고 들어올 때의 고무 탄내—그는 소리와 냄새와 체온으로 지도를 그렸다. 그 지도엔 빛 대신 결이 있었다. 거친, 매끈한, 몽글몽글한, 아린 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집에는 오래된 라디오 하나가 남았다. 바디는 갈라져 나뭇결이 삐져나왔고, 주파수 다이얼은 헐거워 매번 방송을 잡을 때면 금속이 서로 비벼지는 소리가 늘 뒤따랐다. 라디오를 켤 때 방 한쪽에서 곰팡내가 도는 벽지의 냄새가 살짝 흔들렸고, 녹슨 안테나가 창문틀에 닿으면 그는 방송국 위치를 소리 결로 기억했다. 복음송이 흘러나오면 그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때만큼은 보이지 않는 것이 덜 무거웠다.
스무 살 무렵, 시장통 한켠—튀김 기름과 젖은 상자 냄새가 끼우는 구석—에서 그는 구두수선소를 시작했다. 간판은 손글씨였다. ‘한결수선’. 글씨를 써준 동네 학생은 ‘결’ 자를 유난히 굵게 눌렀다. 손끝으로 가죽의 결을 읽는 일은 그의 세계에서 독해와 같았다. 진짜 송아지가죽은 손톱으로 살짝 긁어도 미세한 분진이 일지 않았다. 합성피혁은 손바닥에 잔열이 오래 달라붙었다. 못을 박을 때 해머 머리가 박는 각도가 좋으면 ‘딩’ 하고 맑게 울렸고, 삐딱하면 소리가 탁하게 꺾였다. 그 ‘딩’과 ‘탁’ 사이에서 그는 하루의 성실함을 가늠했다.
그는 밤이면 낡은 성경을 책등이 닳도록 어루만졌다. 점자를 정식으로 배우지 못해 페이지 테두리를 먼저 더듬고, 귀퉁이에 박힌 톱밥 같은 오래된 먼지를 털어내고, 어머니에게서 듣고 외운 구절들을 자신의 호흡에 맞춰 다시 읊었다. “주여, 제게 빛을 주시지 않았으니, 대신 누군가를 볼 수 있는 마음을 주소서.” 그 기도는 공기 중에서 서서히 식었고, 오래되어 유리처럼 매끄러워진 마룻장 위에 내려앉았다. 응답은 오지 않았다. 아니, 그는 응답을 알아보는 법을 아직 몰랐다.
그 무렵 장터에서는 순애라는 여자가 떡을 팔았다. 왼쪽 다리가 약간 짧았다. 장날이 아닌 날에도 그녀는 새벽 공기의 오래 묵은 냄새를 가르며 손수레를 끌었다. 손수레의 덜거덕거림이 골목의 벽돌에 반사되면, 한결은 그 금속의 떨림만으로도 순애를 알아보았다. 그녀는 늘 오른손으로 수건을 허리춤에 끼우고 있었다. 반죽을 치대다 오른 손목에 굳은살이 잡혀 있었고, 겨울이면 그 굳은살이 갈라져 피가 났다. 그럼에도 그녀의 목소리는 밝았다. “한결 씨, 오늘 햇살이 참 고와요.” 한결은 그 말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번역했다. ‘오늘 바깥공기 밀도가 조금 가볍구나.’ 그는 웃으며 답했다. “그 말만으로도 빛이 느껴집니다.” 그녀는 숨을 고른 뒤 짧게 웃었다. 그 웃음이 끝날 때 목 깊은 곳에서 아주 얕은 신음이 섞였다. 다리가 아픈 날의 웃음은 늘 그랬다.
어느 날 순애가 물었다. “당신은 세상이 어둡지 않아요?” 질문은 돌처럼 단단했으나 던지는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한결은 대답 전 잠깐 고개를 들어 귀를 열었다. 바람이 골목을 훑고 지나가는 소리가 종이처럼 얇게 찢겨 나갔다. “세상은 밝지 않지만, 그 안에 있는 사람은 밝습니다. 당신처럼요.” 그 말이 끝나자 그녀의 콧잔등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 떨림을 그는 공기의 잔파장으로 감지했다.
두 사람은 겨울, 허름한 교회에서 결혼했다. 온돌이 고르지 않아 예배당 바닥은 여기저기 푹 꺼져 있었고, 앞줄과 뒷줄이 같은 각도로 앉지 못했다. 십자가 위 형광등은 접점이 헐거워 깜박이며 빛의 박자를 놓쳤다. 목사는 목 뒤쪽에서 진저리가 오르는 듯 떨리는 음으로 말했다. “하나님은 부족한 둘을 하나로 만드십니다.” 목사 손끝이 공중에서 서로를 향해 닿았다 떨어지는 동안, 십자가 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 빛은 따뜻했으나, 기이하게 슬펐다—마치 먼 길 끝에서 겨우 도착한 사람이 마지막 숨을 정리하는 순간 같은.
그들은 단칸방에서 살림을 합쳤다. 창틀 나무는 벌레 먹은 결로 군데군데 속살을 드러냈고, 벽지는 빗물에 번져 얼룩이 하트 모양으로 맺혔다. 겨울이면 석탄 연탄의 숯내가 이불에 스몄고, 여름이면 물을 끓일 때 알루미늄 주전자의 금속 냄새가 방안에 퍼졌다. 한결은 낮엔 구두를 다듬고, 밤엔 순애의 다리에 손바닥을 올려 식은 근육을 따뜻하게 쓸었다. 순애는 반죽을 치고 떡을 찌느라 양손이 늘 밀가루 가루로 하얬다. 그들의 기도는 짧았지만 정확했다. “주님, 우리에게 작은 기적 하나만.” 그 기적은 두 아이로 도착했다—은지, 태수. 은지가 울 때는 얼굴 근육 전체가 참여했고, 태수가 울 때는 턱선과 귀밑이 먼저 움직였다. 한결은 손끝으로 그들의 울음을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은지가 열 살. 여름장마 끝에 하늘이 맑게 개던 날, 은지는 부엌문턱에서 한 번 크게 넘어졌다. 고무신이 문턱에 걸렸고, 그녀는 홀린 듯 “엄마, 불이 꺼지는 것 같아.”라고 속삭였다. 의사는 말수가 적었다. “유전입니다. 아버지의 병이 그대로 이어졌어요.” 진료실의 형광등이 귓속에서 ‘지—’ 하는 소음을 냈고, 그 소음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말했다. 그날 밤 순애는 마당 펌프 옆에 서서 한참을 울었다. 우는 동안에도 왼발은 습관적으로 몸의 균형을 잡으려고 조금씩 밖으로 돌았다. 울음은 길었으나 다음 날 새벽 그녀는 평소처럼 수건을 허리에 끼고 장터로 나갔다. 삶은 눈물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의 절룩임이 증명했다.
태수는 손이 큰 소년이었다. 중학교 때 이미 손등에 작은 상처들이 많았고, 다 낫지 않은 상처 위로 기계기름이 묻으며 또 다른 질감으로 굳었다.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그는 정비소에 취직했다. 토크 렌치의 금속 손잡이가 손바닥 살을 눌러 파고들 때, 그는 이가 시리도록 웃었다. 웃는 동안에도 어머니의 향기—찐 떡에서 올라오던 찹쌀의 달큰하고 무거운 냄새—가 콧속에 들었다 나갔다.
겨울 새벽. 순애는 늘 그렇듯 성경을 품에 안고 골목을 걸었다. 골목은 밤새 내린 서리로 매끈했고, 그녀의 왼발은 미세하게 미끄러지듯 앞으로 나아갔다. 모퉁이를 돌자 멀리서 화물차의 브레이크 골이 깊게 울렸다. 그 소리는 술에 젖은 사람의 발처럼 박자를 놓쳤다. 두 번째 굉음과 함께 매캐한 고무 타는 냄새가 골목에 퍼졌고, 쿵— 하고 무겁고 둔탁한 충격이 공기를 눌렀다. 순애가 쓰러질 때 오른손은 본능적으로 성경을 가슴 쪽으로 끌어당겼다. 아스팔트 위에 펼쳐진 책장. 찬 바람이 페이지를 넘기다 멈춘 곳은 시편 23편이었다. 활자 주변에 검은 얼룩이 천천히 번졌다.
장례식은 소박했다. 상복은 유난히 깨끗해 보였고, 상 위의 국화는 추운 공기 속에서 향기가 더 짙었다. 목사는 천천히 구절을 읽었다. 한결은 듣고 있었지만 듣지 않았다. 위로의 손길이 팔뚝에 닿을 때마다 그는 한 뼘씩 뒤로 물러났다. 그의 입에서 나온 유일한 문장은 낮게 깔린 우레 같았다.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이후 밤. 한결은 순애가 눕던 자리, 이불 가장자리의 눌린 구김을 손끝으로 더듬었다. 성경을 만져도 문장은 돌기 없는 평면처럼 매끄럽기만 했다. 라디오를 켜면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가 정확한 음정으로 흘렀다. 그는 귀를 감싸 쥐고 울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대신 어둠이 목을 타고 내려갔다. 은지는 아버지 손등의 혈관을 하나씩 짚듯 만지며 말했다. “아빠, 엄마는 하늘에 계시잖아요.” 한결이 대답했다. “하늘에도 빛이 없다면?” 은지는 조용히 성경을 껴안았다. 그 밤, 태수는 마당 펌프 옆에 녹슨 철사와 못을 모았다. 손톱 밑에 검은 기름이 박힌 손으로 십자가를 엮었다. 손끝살이 찢어져 피가 스몄지만, 그는 작은 양초 하나를 불 붙였다. 겨우 선 숨 같은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 불빛은 가족에게 남은 마지막 정수였다.
그 불이 꺼질 듯 말 듯, 다시 살아났다. 어디선가 아직 끝나지 않은 기도의 잔광이 방 안을 떠돌았다. 한결은 알 수 없는 울음을 삼켰다. 슬픔인지, 하나님을 향한 마지막 부르짖음인지, 아니면 다시 살아야 한다는 숨은 서약인지—그 자신도 분간하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그는 아직 여기 있었다. 그리고 아직, 빛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어둠의 끝에서 빛은 자신을 숨긴다.
하지만 믿음을 잃은 자의 심장 속에서
빛은 가장 조용히 타오른다.”
제2부 〈사라진 새벽〉
시간은 조용히, 그러나 잔인하게 흘렀다. 순애가 떠난 지 삼 년. 새벽 종소리는 더 이상 그 집에서 기도로 번역되지 않았다. 벽시계는 돌아가고 있었지만 초침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마치 시간이 그 집을 배려해 발끝으로 걷는 것처럼. 성경 위에 가늘게 쌓인 먼지는 하룻밤 눈처럼 반들거렸고, 책등의 갈라진 틈에는 오래 전의 손때가 마른 식초 냄새로 남아 있었다. 집 안의 가장 큰 소리는 침묵이었다.
한결은 낮에 구두를 닦았다. 구둣솔이 가죽을 긁는 사각사각은 유일하게 명확한 리듬이었다. 밤이면 그는 의자에 앉아 몸을 앞으로 살짝 숙였다. 귀는 늘 열린 상태였고, 눈 대신 귀로 방의 윤곽을 더듬었다. “주님, 왜 내게만… 오래된 어둠을.” 그의 질문은 천장을 막아둔 합판처럼 답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침묵으로만 응답했고, 그 침묵은 때로 소음보다 무거웠다.
은지는 장애인복지센터에서 일했다. 오래된 타자기의 건반을 누르듯 점자 타공판 위에 종이를 대고 펀칭바늘을 밀어 올리면, 종이 뒷면에 작은 별들이 솟았다. 그 별들을 손끝으로 다시 훑을 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만든 우주의 지도를 읽는 아이처럼 진지해졌다. 점심시간이면 그녀는 도시락 고무줄을 조심스럽게 벗겼다. 밥 위에 얹힌 계란장조림의 간장 냄새가, 어릴 적 어머니가 찐 떡의 간수 냄새를 어렴풋하게 깨웠다. 그녀는 교회에 나갔다. 예배 중에도 눈을 감았다. 시각을 끄는 행위가 아니라, 기억을 켜는 버릇. “믿음이란 건, 아픈 사람의 습관일지도.” 그녀의 속말은 신음 같았고, 그 신음은 기도와 다르지 않았다.
태수는 하루 열두 시간을 기계 소음 속에 몸을 두었다. 컴프레서 압이 차오를 때마다 공기호스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렌치와 볼트가 맞물릴 때 나는 금속의 짧은 울림, 디젤 냄새, 손바닥 굳은살을 타고 스며드는 오일. 퇴근하면 그는 어머니 사진 앞에서 담배를 피웠다. 담배연기가 방 안에 떠오르면 그는 재떨이에 세 번 짧게 탭을 쳤다. “엄마, 당신이 믿던 그 하나님은 대체 어디 있습니까?” 질문은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종종 믿음의 반대말이 되었다.
가족은 각자의 방식으로 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믿음의 불씨는 남아 있었지만, 재 속 깊이 묻혀 있었다. 아무도 먼저 재를 헤집지 않았다. 그 침묵을 깨뜨린 것은 어느 늦은 오후 골목 끝에서 떠돌아온 낡은 기타 소리였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기타 넥의 프렛이 오래되어 음이 약간씩 흔들렸으나, 그 흔들림이 오히려 사람의 체온 같았다. 줄을 튕기는 손톱이 줄과 살 사이를 지나갈 때 나는 작고 마른 ‘툭’ 소리. 한결의 심장이 아주 오랜만에 미세하게 속도를 나눴다.
다음 날, 문을 두드리는 소리. 규칙적으로 두 번, 한 박자 쉬고 한번. 문이 열리자 낯선 억양이 공손하게 기댔다. “미스터 한결?” 목소리는 낮았고, 끝음에서 약간 올라가는 버릇이 있었다. 존 밀러—거리의 천사라고 불린다는 그 외국인은 낡은 코튼 재킷을 입고 있었다. 소매 끝은 해져 실밥이 바람에 흔들렸고, 재킷 가슴 주머니에는 작은 성경과 볼펜이 꽂혀 있었다. 오른쪽 눈꼬리에 하얀 흉터가 짧게 지나가 있었다. 기타는 오래된 마호가니 바디였다. 바디 중앙에는 동전만 한 흠집이 있었고, 그것을 투명 테이프가 덮고 있었다.
“제가 누군지 모르시겠지만, 부인이 기도하던 교회에서 이야기 들었습니다.” 존의 한국어는 매끄럽지 않았지만, 단어 사이를 메우는 표정과 손짓이 자연스러웠다. 그는 말할 때 늘 손을 가슴께에 올리고 살짝 숙였다. “당신은 여전히 어둠 속에 있습니까?” 한결은 고개를 돌려 대답을 회피했다. 존은 침묵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당신의 아내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믿음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통해.” 그 말은 문장이라기보다, 방 안의 공기 조성을 바꾸는 어떤 성분 같았다. 한결의 가슴 한가운데, 껍질처럼 굳어 있던 부분이 아주 미세하게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그녀의 믿음이라니… 당신이 뭘 안다고.” 분노는 힘이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존은 말 대신 미소로 기다렸다. 기다림은 종종 가장 설득력 있는 증언이었다.
그날 밤, 한결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기타 소리가 메트로놈처럼 귓속에 맴돌았다. ‘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 was blind, but now I see…’ 영어 가사는 뜻이 모두 들리지 않았으나, 소리의 오르내림만으로도 본질은 충분했다. ‘잃었으나, 찾았다. 눈멀었으나, 본다.’ 그는 무릎을 꿇었으나 손끝이 떨려 깍지조차 제대로 끼지 못했다. “하나님… 이제는… 모르겠습니다.” 그 말은 항복이 아니라, 항복을 향한 전야 같았다.
다음 주 새벽—골목의 냉기가 아직 풀리기 전—존이 찾아왔다. 빵 한 덩이와 우유 한 병. 빵은 전날 저녁 작은 빵집 화덕에서 막 나온 것이었고, 표면의 갈색이 아직 살아 있었다. “부인이 마지막으로 나눴던 기도의 선물. 이웃에게 빵을— 늘.” 존은 단어를 고르며 말했다. 한결은 한참 침묵하다가 빵을 쪼갰다. 빵 속에서 밀의 따뜻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는 오래전, 순애가 떡을 쪄내며 주방에서 열기를 내뿜던 그 저녁과 닮았다. 빵을 씹는 동안, 한결의 혀끝에서 소금과 눈물이 거의 같은 맛으로 섞였다.
존은 매주 같은 시간에 왔다. 기타 줄은 여전히 삐걱거렸으나, 그 삐걱거림이 세상으로 열린 틈처럼 느껴졌다. 은지는 처음엔 방문을 닫았다. 그러나 노래의 후렴이 두 번째를 지날 때, 그녀는 문틈에 귀를 댔다. 태수는 퇴근해 기름 떼 낀 손으로 문지방을 잡고 서서 노래를 들었다. 노래는 단순했다. “주여, 나를 도우소서. 주여, 나를 일으키소서.” 단순함은 때로 가장 깊은 곳까지 도달하는 칼날이 되곤 했다. 잊혔던 온기가 재 속에서 살아났다.
“당신, 하나님— 본 적 있어요?” 한결의 질문은 직선이었다. 존은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아니요. 저는 본 적— 없어요. 하지만… 그분은 언제나, 저를 보셨어요.” 문장은 불완전했지만 의미는 완성되어 있었다. 그 말이 한결의 가슴속에 들어가 자리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날 밤, 한결은 무릎을 꿇고 울었다. 울음은 소리보다 뜨거웠다. “하나님, 다시 한번만… 나를 믿게 하소서.” 눈물은 뺨을 타고 흘렀는데, 그는 그것이 물인지 빛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알아차렸다. 믿음은 번개처럼 내리 꽂히는 사건이 아니라, 오래 기다리는 호흡이라는 것을. 신은 떠난 적이 없다. 자신이 너무 오래 등을 돌리고 있었을 뿐.
다음 날 아침, 그는 오랜만에 성경을 펼쳤다. 손끝은 표지를 따라 천천히 회전했고, 종이 가장자리의 작은 찢김에 손을 멈췄다. 요한복음 9장. “나는 세상의 빛이라.” 단락을 넘기며 그는 속삭였다. “주여, 나는 여전히 어둠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어둠—이젠 두렵지 않습니다.” 창문 사이로 바람 한 줄기가 들어왔다. 바람은 비린 철제창의 냄새와 새벽 우유배달의 차가운 냄새를 함께 데려왔다. 그 냄새 속에서 그는 오래전 순애의 목소리를 들었다. “여보, 기도는 응답이 아니라 사랑이야.” 그는 공중 어딘가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빛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지만, 새벽은 다시 그의 안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신의 침묵은 부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허락된 가장 긴 사랑의 시간이다.”
제3부 〈빛이 닿는 곳에서〉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그러나 한결의 방에는 오래된 장판이 발바닥에 전해주는 미묘한 온기가 있었다. 존이 다녀간 자리—창가 곁, 기타가 기대어 서 있던 그 벽—에는 나무와 기도의 냄새가 한 겹 더 얹혀 있었다. 그는 어둠을 원망하지 않았다. 어둠이 그에게 빛의 목마름을 가르쳤고, 빛을 잃은 자리에서 사랑이 어떤 형태로 몸에 남는지 배웠다.
그는 새벽이면 순애가 걷던 길을 따라 교회까지 걸었다. 지팡이 끝의 고무팁이 돌부리에 닿으면 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고무는 돌의 성질—물기를 먹은 것인지, 햇볕에 마른 것인지—을 증언했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순애의 숨소리가 공기에서 되살아났다. “여보, 오른쪽에 물웅덩이.”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보이지 않기에 그는 더 선명하게 느꼈다. 그녀는 죽은 이가 아니라, 그의 믿음의 어법이 되었다.
교회문은 낡아 여닫을 때마다 마른나무가 비명을 질렀다. 예배당 안에는 소독약과 닳은 무릎의 냄새—오래 기도한 자리에서 나는—가 섞여 있었다. 십자가 위 작은 전등이 간헐적으로 깜빡였다. 회로 접점이 녹슨 탓에, 빛은 일정하지 않았다. 그 불규칙이 오히려 살아 있음 같았다. 한결은 맨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좌석에 앉았다. 그 자리는 순애가 마지막으로 무릎을 꿇던 자리이기도 했다. “주여, 나는 여전히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대의 침묵 속에도 사랑이 있음을 압니다.” 그의 두 손이 포갠 자리에서 미세하게 땀이 났다. 그 떨림은 슬픔의 잔여가 아니라, 감격의 선행이었다.
집에는 작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은지는 시편을 점자로 옮겼다. 바늘이 종이를 밀어 올릴 때 나는 ‘툭—툭—’ 소리가 리듬을 만들었다. 그녀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를 눌러 새기면서, 처음으로 울지 않았다. 태수는 퇴근 후 교회 마당을 쓸었다. 빗자루의 솔이 마당의 자갈을 스칠 때 ‘삭—삭—’ 마찰 소리가 났다. “엄마가 늘 쓸던 자리.”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어딘가 탄력이 생겼다. 쓸려 나간 먼지 틈으로 오래된 기도의 향이 다시 피어났다.
밤이면 한결은 라디오를 끄고 기타를 들었다. 존이 남긴 마호가니. 넥의 3 프렛에는 손때가 깊게 밴 홈이 있었다. 그는 엄지와 검지로 줄을 튕기며 가장 단순한 진행을 연습했다. G—C—D. 손끝에 굳은살이 다시 잡히기 시작했다. 노래는 어눌했지만 정직했다. ‘빛이 닿는 곳마다 사랑이 머물고, 사랑이 머무는 곳마다 하나님이 계시네.’ 마지막 음을 길게 끌며 그는 허공을 어루만졌다. “이제 나도 당신의 악기가 되었습니다.” 악기란 스스로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러나 울림을 통과시키며 자신이 조금씩 비워진다. 그는 그 비움이 무엇을 채우는지 알았다.
그날 밤, 창문이 살짝 열려 있었고 차가운 바람이 가늘게 방 안을 더듬었다. 바람에 실려 들어온 것은 강가에서 나던 갈대 냄새와 비슷한, 그러나 더 따뜻한 향기였다. 은지는 잠결에 그 냄새를 ‘엄마의 겨울 외투’라 번역했다. 곧이어 아주 낮고 밝은 목소리. “은지야, 슬퍼하지 마. 네 눈은 세상을 못 보지만, 세상은 너를 보고 있단다.” 은지는 담요를 끌어당기며, 두 손을 가슴 위에 포갰다. 그 순간 어둠은 누군가의 품 같았다—깊고, 포근하고, 말없이 결심을 건네는 품.
며칠 뒤, 존이 마지막 인사를 왔다. 한국 사역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 했다. 그의 목덜미에는 지난겨울 동상 자국이 옅게 남아 있었다. “당신의 믿음— 이제 더 굳건.” 그는 한국어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말했다. 기타를 내밀며 짧게 웃었다. “이건 이제 당신. 당신 노래— 다른 사람 어둠 비춰요.” 한결은 고개를 깊게 숙였다. “주님이 당신을 통해 나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두 남자는 오래 악수했다. 손등의 굳은살이 서로 닿았다. 굳은살은 노동의 흔적이지만, 그날은 축복의 질감 같았다.
존이 떠난 뒤, 교회 앞에서 낯선 찬송이 울렸다. “나의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그 목소리는 한결의 것이었다. 그의 얼굴에는 빛이 흘렀다—보이지 않는 눈이었지만, 눈가의 주름들이 노래의 오르내림에 맞춰 밝게 접혔다. 기타 줄은 햇빛을 받아 얇은 칼날처럼 번쩍였고, 그 번쩍임 사이사이에 순애의 웃음이 비집고 들어왔다.
저녁, 가족이 모여 앉았다. 한결은 말보다 먼저 봉투를 꺼냈다. 수선소의 수입 일부. “이제 우리도 나누자. 누군가의 새벽이… 다시.” 말이 끝나기 전 은지와 태수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리듬까지 닮아 있었다. 그날 밤 세 사람은 함께 노래했다. 노랫말은 단순했고, 화음은 어눌했으나, 방 안의 공기가 한 박자씩 따뜻해졌다. 보이지 않아도, 들리지 않아도, 빛은 이미 그들 안에 있었다.
세월은 다시 흘렀다. 은지는 시각장애 아동에게 점자를 가르쳤다. 아이들이 첫 점자 문장을 읽어낼 때 내는 작은 탄성—‘아!’—에 그녀의 심장이 매번 반응했다. 태수는 작은 정비소를 열었다. 너무 낡아 폐차 직전인 차를 가져온 노인에게 그는 기름값만 받고 웃었다. “아저씨 차, 여전히 잘 뜁니다.” 정비소 벽엔 손으로 적은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형편 어려우신 분— 상의해요.’ 글씨는 서툴렀지만, 내용은 선명했다.
한결의 머리는 눈처럼 희어졌다. 손끝은 굳어 원래보다 느리게 움직였지만, 기타의 기본 진행은 손이 기억했다. 새벽마다 그는 교회 마당 중앙에 섰다. 동녘 하늘이 선홍으로 번질 때, 기타는 더 깊은 울림을 냈다. “주여, 내 평생에 빛이 내게서 멀지 않게 하소서.” 그는 기타를 무릎에 내려놓고 두 손을 서서히 올렸다. 손바닥이 하늘을 향해 열릴 때, 먼 곳에서 닭이 울었다. 해가 떠오르기 직전—어둠과 새벽이 만나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는 그 시간—그는 누군가의 손을 잡는 것처럼 손가락을 살짝 오므렸다.
“순애야.” 이름이 공기 중으로 나갔다. 바람이 대답했다. “여보, 당신의 기도가 이제 들려요.” 한결은 눈을 감았다. 빛이 눈앞에 가득 찼다. 그 빛은 매섭지 않았다. 따뜻했고, 오래된 솜이불처럼 무게가 있었다. 그는 어둠을 떠나—아니, 어둠을 데리고—빛이 닿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빛은 그를 삼키지 않고, 품었다.
장례식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 안은 가득 찼다. 시각장애 아이들이 촉지성경을 가슴에 품고 맨 앞줄에 앉았고, 태수의 정비소 단골들이 기름 냄새를 약간 묻힌 채 뒤쪽 벤치들을 채웠다. 누군가는 말없이 기타 줄을 한 번 만지고 지나갔다. 기타는 조용히 울었다—사람의 손이 떠나면 나무가 혼자 내는 소리. 목사는 마지막 설교에서 말했다. “그는 평생 빛을 보지 못했으나, 영혼은 누구보다 밝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우리에게 ‘사랑이 곧 빛’ 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설교가 끝나자 창문 상단의 색유리 조각을 통과한 햇살이 바닥에 작은 무지개를 만들었다.
은지는 아버지의 기타를 품에 안았다. 나뭇결이 가슴뼈에 닿자 따뜻했다. 태수는 성경을 펼쳤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글자를 소리 내어 읽자, 구절이 방안의 먼지를 천천히 가라앉혔다. 창문 너머로 햇살 한 줄기가 깊숙이 들어왔다. 그 빛은 누군가의 손길처럼 부드럽게 그들의 뺨을 쓸고 갔다.
빛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 다만, 우리가 눈을 감고 있었을 뿐.
“신은 멀리 있지 않았다.
눈먼 인간의 심장 속에,
사랑으로 숨 쉬고 있었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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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람 김왕식 소설 《빛이 닿는 곳에서》
― 절망의 끝에서 피어난 신의 빛
김기량(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의 《빛이 닿는 곳에서》는 장애와 가난, 죽음과 침묵이라는 한국적 비극의 어휘를 서정적 리얼리즘과 신화적 상징의 결로 엮어, 신앙소설의 낡은 교훈성을 우회해 도달한 드문 성취다. 작가는 빛을 결여의 반대말이 아니라, 결여를 수납하는 그릇으로 재정의한다. 보지 못하는 남편 한결과 절뚝이는 아내 순애, 점자 별자리로 세계를 다시 새기는 딸 은지, 오일 냄새 묻은 손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아들 태수—이 가족은 “기적의 사건”을 통해서가 아니라 “지속의 습관”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 여기서 구원은 초월의 번개가 아니라 기다림의 호흡이며, 작가는 그 호흡을 소리·냄새·촉감의 감각적 문장으로 기록한다. ‘딩’과 ‘탁’으로 가늠하는 하루의 성실, 연탄과 곰팡, 성경책의 마른 식초 냄새 등 촉각화된 세계는, 보지 못하는 인물의 인식 구조를 독자의 피부 감각으로 이식한다.
3부 구성은 신학적 드라마의 정연한 아치다. 1부는 결핍의 탄생과 상실의 서사, 2부는 침묵의 효능을 발견하는 변증, 3부는 신앙의 생활화를 통해 공동체 윤리로 확장되는 귀결이다. 특히 거리의 천사 존 밀러가 수행하는 서사적 역할은 구원자의 과잉을 경계하며 ‘매개’로 머문다. 낡은 마호가니 기타, 빵과 우유, 흔들리는 형광등—이 작은 사물들은 신학적 개념을 감각의 층위로 환원하며 상징을 물성으로 착지시킨다. 성경 인용 또한 직설적 설교를 피하고, 요한복음 9장과 시편 23편을 인물의 호흡과 노동의 리듬 속에 흡수한다. “신의 침묵은 부재가 아니다”라는 명제는 요브적 항변의 종결이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적 내면화—“들림이 아니라 들음”—로 심화된다.
문체의 미덕은 절제다. 과장된 수사를 거부하고, 물성의 정확한 명명으로 사유의 무게를 확보한다. 동시에 한국적 생활 감각(시장, 단칸방, 새벽 교회)의 구체가 보편 윤리의 문으로 열린다. 결말에서 한결의 죽음은 승리의 클라이맥스가 아니라, “어둠을 데리고 빛으로” 건너가는 화해의 표징이다. 여기서 빛은 제거의 폭력이 아니라 동행의 윤리로 새겨지고, 소설은 치유담이 아닌 성찰의 기록으로 남는다.
아쉬움이 있다면, 몇몇 장면에서 상징의 반복이 다소 정형화되는 지점—예컨대 촛불·십자가·기타의 모티프가 장면 전환의 신호로 과도하게 기능하는 순간—이 긴 호흡의 변주를 얕게 만들 위험이 있다. 그럼에도 전체 리듬은 흔들리지 않는다. 작가는 “기적의 서술” 대신 “지속의 묘사”를 선택했고, 그 선택이 오늘의 신앙서사를 윤리와 미학의 교차점으로 끌어올린다. 《빛이 닿는 곳에서》는 신을 증명하지 않는다. 대신 인간이 신의 침묵을 감당하는 방식을, 노동과 나눔의 문장으로 보여준다. 그 문장이야말로 이 작품의 가장 밝은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