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는 움직임의 다른 이름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고요는 움직임의 다른 이름






사람들은 고요를 멈춤이라고 생각한다.
진짜 고요는 멈춘 적이 없다.
바람이 불지 않아도 공기는 흐르고,
물이 잠잠해 보여도 그 아래에는
끊임없이 미세한 파동이 있다.
고요는 정지의 끝이 아니라,
움직임이 완전히 조화된 상태다.

새벽의 산길을 걸을 때,
들려오는 것은 새소리도 아니고 바람소리도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움직임이
하나의 호흡으로 합쳐진 순간의 소리다.
그 안에는 시끄러움도, 침묵도 없다.
모든 소리가 하나의 ‘숨’으로 녹아 있다.
그 순간, 마음은 알아차린다.
고요란 소리의 부재가 아니라,
소리와 내가 분리되지 않은 상태임을.

고요한 사람은 세상을 피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 한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고요는 도피가 아니라 중심이다.
세상의 소음이 아무리 커도
그 중심이 흔들리지 않으면
마음은 잔잔한 호수처럼 제 얼굴을 비춘다.
고요는 그 호수의 표면 위에
세상의 하늘이 고요히 비치는 순간이다.

고요 속에서는 시간도 느리게 흐른다.
생각이 멈춘 것이 아니라,
생각이 가벼워진다.
무거운 생각은 바닥으로 가라앉고,
가벼운 마음만이 위로 떠오른다.
그때 비로소 세상은 단순해진다.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남고,
‘가지 못한 길’ 대신 ‘지금의 길’이 보인다.
고요는 삶을 단순하게 정리해 준다.

움직임 없는 고요는 죽은 침묵이다.
그러나 마음이 깨어 있는 고요는 생명의 증거다.
꽃이 피는 순간,
그 안에는 고요가 있다.
하지만 그 고요는 정지된 아름다움이 아니다.
꽃잎이 열리고 향이 번져나가는
아주 미세한 움직임의 음악이다.
그 움직임이 너무 고와서
우리는 그것을 ‘고요하다’고 부른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분노가 가라앉고, 욕심이 사라질 때,
마음속에는 미세한 떨림이 남는다.
그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모든 걸 받아들이는 힘이다.
그 힘이 바로 고요의 본질이다.
고요한 사람의 눈빛은 약하지 않다.
그 안에는 결심보다 깊은 확신이 있다.
그는 세상을 움직이려 하지 않고,
세상 속에서 자신을 흔들리지 않게 세운다.

고요는 무기력과 다르다.
무기력은 마음이 닫힌 상태이고,
고요는 마음이 열린 상태다.
무기력은 세상을 멀리하지만,
고요는 세상을 품는다.
그래서 고요는 살아 있는 용기다.
소리치지 않아도 강하고,
움직이지 않아도 생동감이 있다.

어떤 이는 고요를 외로움으로 오해한다.
고요는 고독의 반대편에 있다.
고요 속에 있을 때
사람은 자신과 세상을 다시 잇는다.
그때의 마음은 혼자가 아니라,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다.
산의 숨, 바다의 결,
사람의 맥박이 한 호흡으로 이어진다.
그 속에서 외로움은 녹고,
존재의 따뜻한 울림이 피어난다.

세상은 시끄럽게 돌아가지만
고요한 마음은 늘 중심에 있다.
그 중심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조금씩 달라진다.
소음은 음악이 되고,
혼란은 흐름이 된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고요는 배워야 할 기술이 아니다.
그건 기억해야 할 본래의 상태다.
우리 모두는 태어날 때부터 고요했다.
처음 숨을 들이마시던 그 순간,
세상은 조용했고,
그 침묵 속에서 생이 시작되었다.
고요는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다.

고요는 멈춤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깊은 움직임이다.
세상의 모든 소리가 사라진 자리에
마음의 숨이 피어난다.


ㅡ청람 김왕식

keyword
작가의 이전글걷는다는 것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