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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대접하는 자리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마음을 대접하는 자리




식탁은 음식을 채우는 공간이 아니라 마음을 건네는 자리다. 어떤 자리든 가장 먼저 지켜야 할 것은 음식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래서 식사예절은 예쁘게 차려진 외양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배려에서 시작한다. 말보다 먼저 나서지 말라는 말은 단순한 침묵의 권유가 아니다. 상대의 집중을 흐리지 않고, 함께하는 시간에 균형을 주기 위한 배려다. 식사보다 입이 먼저 열리면 예는 흐려지고 마음의 온도는 금세 식는다. 한 끼 식사는 조용한 존중에서 시작된다.

음식이 나오면 먼저 그 정성을 보라. 요리에 대한 감상은 셰프의 손길을 인정하는 예이며, 상대에게도 여유로운 분위기를 준다. 차린 음식을 감상하고, 셰프의 정성을 논하라. 음식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결국 한 사람의 깊이를 드러낸다.

술자리가 이어지더라도 억지 권유는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 술을 강제로 권하지 말라. 이는 기본적인 인격 존중이다. 사람마다 사정과 건강, 감정의 흐름이 다르다. 억지 권유는 상대의 선택권을 침범하고, 자리의 품격을 무너뜨리며, 인연의 온기마저 식힌다.

식사 자리에서 가장 흔히 일어나는 실수는 계산서를 두고 벌어지는 불필요한 눈치다. 계산서를 들여다보며 눈치를 주지 말라. 돈의 무게를 꺼내는 순간 식탁은 금세 장사판이 되고, 주고받는 마음의 온도는 사라진다. 정 마음이 불편하다면 말없이 보태면 되고, 아니면 깔끔히 맡기면 된다. 계산은 식탁에서 마음을 어지럽혀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식사를 먼저 제안한 사람은 그 자리의 주인이자 책임자다.
“식사하자고 하는 사람이 식사 대접하라.”
이는 한국적 미덕을 넘어 인간관계의 기본 원칙이다. 초대의 말에는 이미 배려하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다.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신뢰를 얻는다.

모든 관계는 식사예절에서 드러난다. 작은 배려가 쌓여 큰 신뢰가 되고, 신뢰는 다시 인연을 이어주는 근육이 된다. 결국 식사예절의 핵심은 음식이 아니라 사람이다. 그 마음만 잘 지키면 한 끼 식사도 오래 기억될 인연이 된다.

비즈니스에서도 식사예절은 예외가 아니다.
아무리 큰 계약이라도 식사 예절이 먼저다.
식탁의 공기가 흐트러진 뒤에 나누는 사업 이야기는 결코 깊이 도달하지 못한다. “식사 자리가 무르익을 때 사업을 말해도 늦지 않다.”
상대의 마음이 편안해지고 대화의 온도가 자연스러워질 때 비로소 말은 도달한다. 고품격의 언행이 사업 성공을 좌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계 부호들이 수억 원을 들여 특정 인물과 식사 자리를 마련하는 이유도 이 맥락이다. 워런 버핏과 함께 식사하기 위해 개인 전용기를 타고 수천 킬로를 날아가는 사람들은 음식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식탁을 통해 그의 철학, 판단력, 태도, 습관을 보고자 한다. 식사는 사람의 깊이를 가장 정확하게 드러내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식탁은 말보다 행동이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자리이며, 시선 하나, 물컵을 드는 손끝 하나까지 사람의 품격이 고스란히 비친다.

식사예절은 결국 인격의 외출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상대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 하나면 된다.
그 마음이 담긴 자리에서 맺어진 인연은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식탁 앞에서의 태도는 그 사람의 전부를 설명한다.
그래서 식사예절은 작은 규칙이 아니라, 삶의 품격을 드러내는 더 큰 질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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