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의 문턱에서, 시간을 건너는 숨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새해의 문턱에서, 시간을 건너는 숨



청람 김왕식




해가 바뀌는 일은
숫자가 옮겨 적히는 일이 아니라
숨이 자리를 바꾸는 일이다

밤의 가장 깊은 골짜기에서
시간은 소리를 낮추고
사람의 마음 곁으로 내려온다

어제는 아직 떠나지 않았고
내일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그 사이,
지금이라는 얇은 다리 위에
우리는 서 있다

한 해는 늘
결과로만 기록되지만
삶은 언제나
과정으로만 살아진다

성공과 실패
이룸과 상실
환호와 침묵 사이에서
사람은 하루를 건너왔다

무너진 날도 있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날도 있었으며
그저 견뎌냈다는 이유 하나로
겨우 통과한 날들도 있었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그날은 이미
자기 몫의 존엄을 가졌다

2025라는 이름의 시간은
우리를 시험했고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몸으로
그 시험장을 빠져나왔다

어떤 이는 잃었고
어떤 이는 지켰으며
어떤 이는 끝내
자기 자신을 다시 만났다

사람은 늘
앞으로 가기 위해
자기 안의 뒤를 돌아본다

후회는 남았으나
도망치지 않았고
두려움은 컸으나
완전히 등을 돌리지는 않았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이제
2026이라는 이름의 문이
조용히 열린다

이 문은
환호로 열리지 않는다
다짐으로도 열리지 않는다

다만
조심스러운 발걸음 하나,
오늘을 성실히 살겠다는
말 없는 의지 하나로
열릴 뿐이다

새해는
특별해지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 더 인간답게
살아보라고 권할 뿐이다

오늘의 세계는
여전히 빠르고
여전히 요란하다

말은 넘치고
이해는 부족하며
확신은 큰 소리로 말해지고
사려는 작은 목소리로 밀려난다

그러나
조용히 듣는 한 사람이
세상을 덜 거칠게 만든다

천천히 걷는 한 사람이
시간을 다시 사람에게 돌려준다

2026년의 첫 아침,
우리는 묻는다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덜 해도 되는가를

누구를 이길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갈 것인가를

얼마나 앞설 것인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를

이 해에
더 많은 성취가 없어도 좋다

다만
덜 상처 주고
덜 무너뜨리고
덜 외면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이 해에
더 큰 이름이 남지 않아도 좋다

다만
누군가의 기억 속에
조용히 따뜻했던 얼굴 하나로
남을 수 있다면 충분하다

새해의 시간은
약속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늘 하루를
정직하게 살겠다는
작은 실천 하나면 된다

눈앞의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일

자기 자신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일

그리고
세상이 거칠어질수록
마음을 조금 더 낮추는 일

2026년 1월 1일,
이날은
시작이 아니라
연결이다

어제에서 오늘로,
오늘에서 내일로
숨이 이어지는
그 중간의 자리다

그래서 우리는
서두르지 않고
과장하지 않으며
다만
한 걸음씩
사람의 방향으로 걷는다

해는 다시 떠오르고
세상은 또 하루를 요구한다

그러나 오늘,
이 첫날만큼은
서로에게 말하자

“잘 버텨왔다.”
“아직 괜찮다.”
“계속 가도 된다.”

그 말 한마디가
올해를 지탱하는
가장 단단한 기둥이 될 것이다

2026년은
더 높아지기보다
더 깊어지는 해이기를

더 앞서기보다
더 곁에 서는 해이기를

그리고
이 시간의 끝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조금 더 인간이었기를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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