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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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를 낮추면 길이 말을 건다
달삼이는 친구들과 자전거 여행을 떠난다.
출발의 순간, 페달은 가볍고 웃음은 바람보다 앞선다. 길은 넓고 하루는 길 것처럼 보인다.
여행은 언제나 그렇게 시작되어, 그렇게만 끝나지는 않는다. 어느 지점에 이르러 달삼이는 뒤처진다. 바람은 생각보다 무겁고, 오르막은 말없이 길어진다.
앞서간 친구의 목소리가 뒤를 돌아본다.
“어서 오라.”
재촉은 호의의 다른 이름이지만, 그 말이 닿는 자리에는 늘 속도의 기준이 먼저 놓인다. 함께 간다는 말속에, 먼저 가 있다는 사실이 겹쳐진다.
달삼이는 페달에서 발을 뗀다.
숨을 고르고 고개를 들자, 길의 표정이 달라진다. 그때 곁을 걷는 노신사를 만난다. 그는 목적지보다 발밑을 먼저 보는 사람이다. 빠르게 지나갈 이유가 없는 사람의 걸음은, 길을 지우지 않고 남긴다.
노신사는 말한다.
“속도를 늦춘다는 것은 그만큼 자연과 가까워진다는 것이지요.”
짧은 말이었으나, 길은 그제야 길어졌다.
속도는 도착을 앞당기지만 풍경을 덜어낸다. 빠를수록 도착은 빨라지되, 도착의 의미는 얇아진다. 느릴수록 도착은 늦어지되, 길의 결은 두터워진다. 달삼이는 문득 알게 된다. 여행은 ‘먼저’의 문제가 아니라 ‘곁’의 문제라는 것을.
속도를 낮추자, 길이 말을 건다.
바퀴 아래 자갈의 미세한 떨림, 논둑에서 올라오는 흙냄새, 햇빛이 잎맥을 통과하며 남기는 무언의 반짝임. 빠를 때는 배경이던 것들이, 느려지자 문장이 된다. 자연은 늘 그 자리에 있었고, 다만 사람만 서둘러 지나쳤을 뿐이다.
앞서간 친구들의 재촉은 여전히 들린다.
달삼이는 안다. 재촉이 사랑의 한 얼굴일 수는 있어도, 사랑의 완성은 기다림에 있다는 것을. 기다림은 속도를 강요하지 않는다. 각자의 리듬을 존중한다. 기다림이 있는 길에서는, 누구도 진짜로 뒤처지지 않는다.
노신사는 말없이 다시 걷는다.
그의 걸음은 목표를 향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의 길을 온전히 밟는다. 그 발걸음에는 서두름도 후회도 없다. 달삼이는 다시 페달을 밟는다.
이전보다 느리게,
그러나
더 깊게.
목적지는 그대로인데, 세계는 넓어진다.
행복은 빠르게 얻는 성취가 아니라, 천천히 가까워지는 감각일지 모른다.
속도를 낮출 때 비로소 삶은 말을 건다. 자연은 늘 가까이 있었고, 삶 또한 그 곁에 있었다. 우리가 할 일은 단 하나, 조금 늦추는 것이다.
길은,
생각보다 오래 우리를
기다려준다.
―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