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배우 안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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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로 이루어진 유산, 사회로 돌아가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한 사람의 생이 끝났을 때 남는 것은 재산의 규모가 아니라 그 사람이 세상에 남긴 태도다. 배우 안성기라는 이름이 특별한 이유는 연기의 깊이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언제나 과장되지 않았고, 앞서지 않았으며,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다. 스크린 안에서는 인물로 사라졌고, 스크린 밖에서는 조용히 시민으로 남았다. 국민배우라는 호칭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요구해서가 아니라, 오래 지켜본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건넨 이름이었다.
그의 부재를 떠올리는 순간, 애도는 소란스럽지 않다. 박수와 플래시 대신, 한숨처럼 낮은 침묵이 자리를 채운다. 우리는 그가 남긴 장면들을 떠올린다. 화려한 클로즈업보다 인물의 숨결을 먼저 살피던 연기, 말보다 태도를 앞세우던 삶. 그래서 그의 죽음은 비극의 소식이라기보다, 오래 알고 지내던 이웃이 떠난 뒤의 공백처럼 다가온다. 슬픔은 크되 요란하지 않다.
만약 한 배우의 삶이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 온다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유산을 떠올린다. 액수와 분배, 상속의 비율과 법적 권리. 대개 그 지점에서 이야기는 흐려진다. 고인의 이름은 사라지고 숫자만 남는다. 유족은 갈라지고, 법정은 길어진다. 생전의 명예는 종종 사후의 분쟁 속에서 닳아버린다. 그것이 우리가 익숙하게 보아온 장면이다.
이 글이 떠올리는 장면은 다르다.
“아버지의 유산은 개인의 소유가 아닙니다.”
그의 가족이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결단이 아니라 이해일 것이다. 한 사람의 수백억 자산이 개인의 능력만으로 축적되었다고 말하기 어렵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 그 재산은 수십 년 동안 관객이 보낸 박수와 신뢰, 극장이라는 공동의 공간에서 형성된 공적 자본에 가깝다는 자각이다. 애도는 여기서 미담으로 비켜서지 않는다.
외려 원칙으로 서 있다.
연기는 혼자 완성되지 않는다. 관객이 없으면 배우도 없다. 카메라와 조명, 동료 배우,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을 내어 자리에 앉아 준 시민이 있었기에 한 사람의 이름이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그 결과물 역시 사회와 무관하다고 말할 수 없다. 유족이 “모두 사회에 환원합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상속은 소유가 아니라 환대가 된다. 법적 행위가 아니라 윤리적 선언이 된다. 떠남의 순간에도 삶의 태도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증거다.
이 선택은 감동을 노린 제스처가 아니다. 조용한 논리다. 공적 신뢰로 쌓은 자산은 다시 공적 영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단순하고도 단단한 인식. 이 인식 앞에서 상속은 다툼의 대상이 아니라 책임의 문제로 바뀐다. 남기는 사람의 품격이 아니라, 이어받는 사람의 태도가 시험대에 오른다. 애도는 눈물이 아니라 기준으로 남는다.
그의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장례의 장면이 아니라 질문이다. 우리는 부를 어떻게 말해왔는가, 부를 어떻게 떠나보낼 것인가. 어떻게 벌었는가보다 어떻게 남겼는가가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순간이 있다. 침묵으로 일관했던 한 배우의 삶은, 마지막 인사에서도 소란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길을 하나 남긴다.
박수는 사라지지만, 태도는 남는다.
재산은 흩어지지만, 선택은 기억된다.
안성기는 그래서 여전히 연기하고 있다. 스크린 위가 아니라 사회라는 무대에서. 과장도 클로즈업도 없이, 오래 남는 연기로.
ㅡ 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