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목욕탕에 들어온 호랑이 한 마리
대중목욕탕은 하루치 세상을 한꺼번에 풀어놓는 곳이다.
그 안에서는 직함도 나이도 잠시 벗어 둔다. 문패 대신 수건 하나 두르면 모두가 같은 체온의 인간이 된다. 목욕탕은 늘 뜻밖의 장면을 숨겨 둔다. 연출도 각본도 없는데, 이상하게 결말은 꼭 사람 마음을 건드린다.
그날도 그랬다.
한 할아버지가 작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등을 민다. 팔을 뒤로 한껏 돌려 보지만 어림없다. 허리춤 언저리까지만 손이 닿는다.
그 부분만 유독 시뻘겋다. 마치 “여기까지가 내가 살아온 반경이여” 하고 고백하는 듯하다. 그 위쪽은 여전히 손때 한 번 안 탄 미개척지다. 인생에도 저런 곳이 남아 있겠지 싶다.
탕 밖에서 양치하던 한 청년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본다.
시선은 조용한데, 등짝은 요란하다. 한 폭의 동양화다. 대나무숲을 헤치며 호랑이 한 마리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포효하고 있다. 꼬리는 오른쪽 다리 뒤꿈치까지 유장하게 흘러내린다. 붓 대신 바늘로 그린 산수화다. 위엄이 너무 살아 있어 오히려 숨이 막힌다.
잠시 뒤, 그 청년이 탕으로 들어온다.
육중한 몸이 물속으로 미끄러지자 탕물이 한 번 크게 출렁인다. 그 옆에서 시조창을 읊조리던 노인이 그만 물을 한 모금 들이켜고 만다.
콜록, 콜록.
연거푸 재채기다.
웃음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아무도 감히 소리를 내지 못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방금 탕을 흔들어 놓은 그 호랑이 문신의 주인공 때문이다. 웃음은 참을 수 있어도 본능은 쉽지 않다. 사람들은 본능 앞에서 늘 조심스러워진다.
뜻밖에도 그 사나이가 먼저 탕을 빠져나온다.
물기 묻은 몸으로 다가와 할아버지 앞에 선다. 그리고 말한다.
“어르신, 등 좀 밀어드릴까요.”
순간, 공기가 멈춘다.
할아버지는 흠칫 놀라 문신을 한 번 보고, 손사래를 친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목소리에는 이미 ‘괜찮지 않음’이 묻어 있다.
사나이는 웃는다.
호랑이가 웃는다. 그리고 다시 말한다.
“아이고, 괜찮다니까요. 내가 살살 해불게요.”
그 말투가 묘하게 마음을 풀어놓는다.
할아버지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의자에 웅크린다. 어깨가 사시나무 떨듯 잔뜩 움츠러든다. 인생에서 가장 긴 몇 분이 시작된다. 혹시라도 아프면 어쩌나, 혹시라도 물살이 거칠어지면 어쩌나. 탕 안의 공기마저 긴장한다.
웬걸.
손길이 너무나 조심스럽다. 세상에서 가장 공손한 힘이다. 마치 깨질까 봐 다루는 도자기 같다. 힘센 손이 힘을 내려놓는 순간이다. 등은 서서히, 그러나 고르게 붉어진다. 미개척지는 문명화되고, 오래 묵은 피로가 물처럼 흘러내린다.
탕 안의 모두가 그 장면을 본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다들 같은 생각을 한다.
아, 저 청년은 호랑이가 아니구나.
아니, 호랑이이되 사람인 거구나.
목욕탕에서 배운다.
무서워 보이는 등에야말로 가장 따뜻한 손이 달려 있을 수 있다는 것.
진짜 힘센 사람은, 힘을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라 힘을 거둘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날 목욕탕을 나서며, 괜히 등이 간질거렸다.
비누 때문이 아니라 마음 때문이다.
언젠가 누군가가 내 등도,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살살 밀어주었으면 해서.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