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행동 사이에 놓인 생각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말과 행동 사이에 놓인 생각





요즘은 듣는 일이 너무 쉽다.
말이 귀에 닿기 전에 이미 화면을 통해 먼저 들어온다. 뉴스 알림, 단체 채팅방, SNS의 짧은 문장들.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타인의 말과 생각을 훔쳐 듣듯 접한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충분히 생각할 틈도 없이, 들은 말을 다시 말하고 본 장면을 곧바로 판단한다. 그렇게 말은 가벼워지고, 관계는 쉽게 흔들린다.

오래된 말 하나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많이 듣되, 의심스러운 것은 빼고 말하라는 가르침이다. 지금 시대에 더 어울리는 말이다. 모든 정보가 사실일 수는 없다. 누군가의 감정이 섞인 이야기, 맥락이 잘린 장면, 조회 수를 노린 자극적인 말들. 그런 것들은 사실보다 빠르게 퍼지지만, 책임은 남기지 않는다. 문제는 그 말을 옮기는 순간, 책임이 내 몫이 된다는 점이다. 말을 옮겼다는 이유만으로 관계가 멀어지고, 신뢰가 금 가는 일은 생각보다 흔하다.

신중하다는 것은 말을 아끼는 태도가 아니라, 말을 고르는 태도다. 지금 이 말을 꼭 해야 하는지, 하지 않아도 괜찮은 말은 아닌지, 혹시 나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상대를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이다. 이렇게 걸러진 말은 많지 않다. 대신 오래 남는다. 허물이 적은 말이란, 완벽한 말이 아니라 되돌아봐도 부끄럽지 않은 말이다.

보는 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보고 나면 안다고 착각한다. 한 장면, 한 표정, 한 사건만 보고 사람을 규정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언제나 일부다. 그 사람의 하루, 사정, 맥락은 보지 못한 채 판단부터 앞선다. 이럴 때 행동은 쉽게 위태로워진다. 충고라는 이름의 간섭, 정의라는 이름의 공격, 솔직함이라는 이름의 무례가 여기서 나온다.

신중한 행동은 늦는 것이 아니다.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이다. 이 선택이 누군가를 곤란하게 만들지는 않는지, 지금은 말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은 순간은 아닌지 멈춰 서는 일이다. 이렇게 선택한 행동은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후회가 적다. 적어도 그때의 나는 충분히 고민했고, 가볍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말과 행동은 결국 한 사람의 태도를 드러낸다. 귀로 무엇을 들었는지보다, 그것을 어떻게 걸러냈는지가 중요하다. 눈으로 무엇을 보았는지보다, 그다음에 어떻게 행동했는지가 사람을 만든다. 허물이 적은 말, 후회가 적은 행동은 눈에 띄지 않지만 삶을 단단하게 만든다. 요란하지 않아도 신뢰가 쌓이고, 앞서지 않아도 곁에 오래 남는다.

오늘도 많은 말이 오가고 많은 장면이 스쳐 지나갈 것이다. 그중에서 몇 가지만 덜 믿고, 몇 번만 덜 서두른다면 삶은 조금 더 부드러워진다. 말과 행동 사이에 생각이 놓이는 순간, 사람은 비로소 어른이 된다. 그리고 그런 어른은, 조용히 주변을 편안하게 만든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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