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 ㅡ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피로사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피로사회》에서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는 말한다.
오늘의 사회는 사람을 때리거나 억압해서 무너뜨리는 사회가 아니라, 스스로를 쉬지 못하게 만들어 지치게 하는 사회라고.
현대인은 누군가에게 착취당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착취로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간다. 더 무서운 것은 그 착취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이 말은 한국 사회의 일상과 놀랄 만큼 닮아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부터 확인한다. 아직 몸은 침대에 있는데, 마음은 이미 하루를 시작한다. 밤새 쌓인 메시지와 알림을 보는 순간, 오늘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서 줄을 선다. 급하지 않은 일인데도,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하루는 이렇게 시작부터 바빠진다.
회사나 일터에서 누가 고함을 치지 않아도 사람들은 스스로 속도를 낸다. “조금만 더 하면 되잖아”, “이번까지만 버티자”라는 말로 자신을 설득한다. 늦게 퇴근하면 열심히 산 것 같고, 정시에 퇴근하면 괜히 눈치가 보인다. 쉬는 날에도 마음이 편치 않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아, 쉬면서도 자기 계발 영상이나 정보를 찾는다. 결국 쉬는 시간마저 또 하나의 과제가 된다.

이것이 한병철 교수가 말한 '피로사회'의 모습이다.
누가 강제로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를 계속 몰아붙이는 삶이다.
사람들은 힘들 때 말한다.

“제가 부족해서 그래요.”
“제가 더 노력해야죠.”

조금만 둘러보면 알 수 있다. 다들 비슷하게 지쳐 있고, 비슷하게 불안하다. 성과를 내도 만족이 없고, 잘해도 다음 목표가 바로 생긴다. 실패하면 구조를 묻기보다 자신을 먼저 탓한다. 이때 피로는 몸이 아니라 마음에 먼저 쌓인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도 진짜 쉼은 잘 오지 않는다. 휴대폰을 내려놓으면 불안하고, 붙잡고 있으면 더 피곤하다. 아무 생각 없이 쉬고 싶은데, ‘이렇게 쉬어도 되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쉬는 일조차 허락받아야 할 것처럼 느껴진다.

이 사회가 더 힘든 이유는 분노할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상사나 제도, 권력이 보였다. 지금은 “내 선택”, “내 책임”이라는 말이 앞선다. 하며, 사람들은 지쳐 쓰러질 때까지 자신을 채찍질하면서도, 사회를 탓하지 않는다. 완전히 무너지고 나서야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그때는 다시 일어날 힘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아주 단순하다.
정말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가.
잠시 멈추면 정말 실패자가 되는가.
한국 사회에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열심히 하라”는 말이 아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말, “오늘은 쉬어도 된다”는 허락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도 의미 있다는 믿음이다.

삶이 조금 나아지는 출발점은 거창하지 않다.
메시지에 바로 답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 보는 것,
남과 비교하지 않고 오늘의 나를 인정하는 것,
지쳤다고 솔직히 말하는 것.
그 작은 선택들이 쌓일 때, 우리는 더 이상 조용히 소진되지 않아도 되는 삶에 조금씩 가까워질 수 있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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