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5분 이후
청람 김왕식
총구 앞에서
이미 한 번
모든 것을 잃었다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날
죽음보다 먼저
삶을 끝까지 보았다
하늘은 과하게 푸르고
눈 덮인 광장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했다
그 고요 속에서
시간은 더 이상
흐르지 않았다
이후의 시간은
모두 덤이었다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는 길
발목을 조이는 쇠사슬도
밤마다 뼛속을 파는 추위도
이미 겪은
그 5분에 비하면
통증이 아니었다
죽음 직전
인간은
고통을 재는
기준을 바꾼다
살아 있음 자체가
기적이 된 뒤에는
고난은
조건이 아니라
풍경이 된다
그는
눈밭에서 쓰러지며
절망하지 않았다
이미 절망을
끝까지 써 보았기 때문이다
남은 삶은
형벌이 아니라
연장된 질문이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가
사형 5분 전을
통과한 사람에게
유배는
벌이 아니었다
외려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여
그는 그곳에서
인간을 썼다
죄와 벌을
고통 속에서가 아니라
이미 고통을
넘어선 자리에서
죽음 이후에
시베리아가 왔고
시베리아 이후에
문학이 왔다
그의 생은
증명한다
한 번
완전히 죽어 본 사람만이
남은 삶을
두려움 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을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