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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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림 끝에서 나를 되찾는 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아침,
눈을 뜨고 창문을 연다.
밤새 세상을 얼려 놓은 혹한이
실내로 스며든다.
몸이 먼저 움츠러들고
숨이 잠깐 멎는다.
그 찰나,
정신이 또렷해진다.
추위는
언제나 외부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종종
자기 마음에서 더 차갑게 얼어붙는다.
요즘은
참으로 많은 것이 흔들린다.
세상은 빠르고
사람들의 말은 더 빠르다.
조용히 살아도 불안하고
열심히 살아도 허전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나를 살지 못하고
나를 연기한다.
어제의 나는
분명 나였는데,
오늘의 나는
남의 시선 속에서 조정된 얼굴이다.
때로는
칭찬 한마디에 과하게 들뜨고,
무심한 말 한 줄에
하루가 무너진다.
문득 깨닫는다.
상처가 예민해서가 아니라
중심이 비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본래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은
큰 일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아주 작은 것에 닳아간다.
사소한 비교,
사소한 평가,
사소한 눈치,
사소한 인정욕구.
그 작은 것들이
하루를 갉아먹고
인생을 마르게 한다.
그때 나타나는 첫 징후는
‘과잉 반응’이다.
마음이 제자리를 잃으면
말 한마디가 칼이 된다.
세상이 나를 공격하는 것 같고
모두가 나를 판단하는 것 같아진다.
둘째는
‘만성 피로’다.
쉬어도 회복되지 않는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여기저기 찢겨 나가면
잠을 자도
영혼은 쉬지 못한다.
셋째는
‘자기혐오’다.
잘하고도 불안하다.
성취가 기쁨이 아니라
다음 불안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잘해도 부족하고
못하면 더 초라해진다.
사람이 자신을 미워하면
세상은 더 차가워진다.
넷째는
‘관계의 소모’다.
사람을 사랑하기보다
증명하려 한다.
대화는 나눔이 아니라 방어가 되고
친절은 마음이 아니라 의무가 된다.
가까운 사람에게는 날카롭고
먼 사람에게는 상냥한
모순이 생긴다.
다섯째는
‘공허한 열심’이다.
바쁜데도 남는 것이 없다.
움직임은 많은데
삶이 깊어지지 않는다.
달리고 있는데
도착한 곳이 없다.
이 모든 흔들림의 뿌리는
단 하나다.
‘나’로 살지 못하고
‘나처럼 보이려는 나’로 살기 때문이다.
참 자아는
단순하다.
말이 많지 않고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리에서
자기 몫을 살아낸다.
그러나 가짜 자아는
늘 복잡하다.
설명해야 하고
증명해야 하고
인정받아야 한다.
그래서
더 쉽게 지친다.
그렇다면
어떻게 다시
본래 마음을 되찾을 것인가.
방법은 거창하지 않다.
외려 너무 소박해서
사람들이 믿지 않는 길이다.
첫째,
속도를 낮춰야 한다.
급하게 살수록
마음은 바깥으로 튄다.
천천히 걸어야
내 안의 숨소리가 들린다.
속도를 낮추는 일은
패배가 아니다.
자기를 회복하는 기술이다.
둘째,
하루에 한 번은
자기에게 묻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나는 진짜 무엇을 원하는가.”
“나는 지금 누구의 시선을 대신 살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사람은 비로소
자기 편이 된다.
셋째,
비교를 끊어야 한다.
비교는
나를 성장시키는 듯 보이나
사실은 나를 소진시킨다.
비교는 언제나
나를 늦게 만들고
나를 부족하게 만들고
나를 초라하게 만든다.
비교를 끊는 순간
삶은 다시
제 속도로 숨을 쉰다.
넷째,
말의 양을 줄여야 한다.
말이 많아질수록
마음은 얕아진다.
변명과 해명을 늘어놓을수록
삶은 더 초라해진다.
침묵은
패배가 아니라
자기 점검의 공간이다.
다섯째,
작은 진실을 지키는 훈련을 해야 한다.
거창한 결심보다
오늘 한 번의 정직이
사람을 살린다.
작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은
큰 인생도
결국 지킨다.
본래 마음을 찾는 일은
갑자기 번개처럼 깨닫는 일이 아니다.
매일
흔들리는 나를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넘어져도
자기 마음을 놓치지 않는 사람.
그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다.
오늘도 창문을 연다.
혹한이 들어온다.
이제사 안다.
차가운 바람이 지나가도
내 마음만은
따뜻한 쪽으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을.
인생에서 가장 값진 승리는
남을 이기는 승리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승리다.
그리고 그 승리는
언제나
조용히 이루어진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