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은 내 안에서 시작된다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평온은 내 안에서 시작된다




혼란은 바깥에서 시작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 안에서 완성된다. 사람은 사건 때문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사건을 해석하는 방식 때문에 무너진다. 같은 비바람을 맞아도 어떤 이는 우산을 접고 걷고, 어떤 이는 하늘을 원망한다. 결국 마음의 평온은 환경의 선물이라기보다 태도의 선택이다.

혼란한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는 길은 의외로 단순하다. 모든 원인을 남에게서 찾지 않고, 내 안에서 먼저 찾는 순간부터 가능해진다. ‘모두 내 탓이다’라는 문장은 자기 비하가 아니라 자기 회복의 출발점이다. 남 탓은 마음을 일시적으로 가볍게 만들지만, 결코 삶을 바꾸지 못한다. 반대로 내 탓을 인지하는 순간, 마음은 비로소 주도권을 되찾는다. 내가 원인이라면 내가 바꿀 수 있다. 그때부터 혼란은 운명이 아니라 조정 가능한 상태가 된다.

대부분의 혼란은 억울함에서 자란다.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마음을 괴롭힌다. 그러나 그 질문은 대개 답을 주지 않는다. 억울함은 현실을 바꾸지 못한 채 감정만 늘린다. 그때 필요한 것은 질문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다. “왜 나에게”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놓쳤는가”로 바꾸는 순간, 감정은 정리되고 사고는 단단해진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첫 번째 기술은 원망을 중단하는 것이다.

내 탓을 아는 사람은 세상을 단죄하지 않는다. 그 대신 자기 반응을 점검한다. 말이 거칠었는지, 판단이 빨랐는지, 기대가 과했는지, 상처를 내고도 모르고 지나쳤는지, 혹은 상처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는지. 결국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상대의 행동보다 내 안의 ‘기대의 균열’인 경우가 많다. 기대는 사랑으로 보이지만, 때로는 통제의 다른 이름이 된다. 기대가 부서질 때 마음도 함께 부서진다. 그러니 평온을 지키는 사람은 기대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기대를 성찰한다. 무엇을 바랐고, 왜 바랐는지를 천천히 되묻는다.

물론 모든 일이 내 책임이라는 말은 지나치게 가혹할 수 있다. 어떤 사건은 분명히 타인의 잘못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평온을 유지하려는 사람은 ‘누가 틀렸는가’보다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한다. 그 차이가 삶의 결을 바꾼다. 남이 만든 파도는 막을 수 없지만, 내가 노를 저어 방향을 바꿀 수는 있다. 내 탓을 인지하는 태도는 나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운전대를 다시 잡는 일이다.

평온은 감정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다. 감정이 올라와도 휘둘리지 않는 상태다. 분노가 치밀어도 말로 폭발하지 않고, 불안이 올라와도 상상으로 무너지지 않고, 서운함이 밀려와도 관계를 끊어내지 않는 힘. 그 힘은 ‘내 탓’이라는 자각에서 나온다. 내 마음은 내가 다룬다. 내 표정은 내가 책임진다. 내 하루는 내가 선택한다. 그렇게 정리되는 순간, 혼란은 더 이상 절망이 아니라 훈련이 된다.

평온은 거창한 수행이 아니다. 날마다 스스로에게 묻는 작은 습관이다. “지금 내가 과하게 반응하는가.” “내가 원하는 것은 사실 무엇인가.” “내가 오늘 해야 할 가장 단순한 한 가지는 무엇인가.” 이 질문들 앞에서 마음은 조금씩 바닥을 찾는다. 바닥을 찾은 마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파도가 높아도 중심을 잃지 않는다.

혼란한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는 길은, 남을 바꾸려는 싸움이 아니라 나를 바로 세우는 결심에서 시작된다. ‘모두 내 탓임을 인지할 때’ 평온이 가능하다는 말은, 삶을 책임질 사람이 결국 나 하나라는 담담한 진실이다. 그 진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마음은 조용해지고 삶은 단단해진다. 그리고 그 조용함 속에서, 비로소 내일이 다시 걸어올 힘을 얻는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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