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白鯨(모비딕)을 품은 고독 ㅡ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백경白鯨을 품은 고독

— 한 권의 소설이 인간을 멈추게 하는 이유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소설가 황석영은 말한 바 있다.

다시 젊은 시절로 돌아간다면 《모비딕Moby Dick》한 권을 들고 산사에 들어가 며칠간 칩거하며 읽고 싶다고.

세상의 소음을 끊고, 자신을 둘러싼 욕망과 시간의 압박에서 잠시 벗어나 오직 그 책 한 권과 마주 앉겠다는 고백이다.

이 말은 단순한 독서 취향의 고백이 아니다. 한 작가의 생애를 관통한 문학적 충격과 정신적 울림을 드러내는 고백이다.

그렇다면 《백경》은 어떤 작품이기에 한 시대의 이야기꾼을 그토록 붙잡아 두었는가.


허먼 멜빌의 《백경白鯨》은 줄거리로 환원되지 않는다. 고래를 쫓는 이야기라는 설명은 이 작품의 외피에 지나지 않는다. 작품의 중심에는 인간 존재의 심연이 있다. 에이해브 선장의 집착은 단순한 복수가 아니라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려는 무모한 시도의 상징이다.

그는 고래를 향해 작살을 던지지만, 실은 우주의 불가해함을 향해 던진다. 그 장면에서 독자는 묻게 된다.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으며,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존재인가. 이 질문의 깊이가 독자를 붙잡는다.


황석영이 산사라는 공간을 떠올린 까닭도 여기에 닿아 있다. 《백경》은 속독으로 지나갈 수 있는 책이 아니다. 고래의 해부학과 항해의 기술, 성서적 상징과 철학적 독백, 바다의 묘사와 인간의 사유가 겹겹이 쌓여 있다. 그것은 한 권의 소설이라기보다 사유의 숲이다.

침묵 속에서 천천히 걸어야 길이 보인다. 산사의 고요는 작품이 요구하는 독서 태도와 정확히 호응한다. 읽는 일이 아니라 마주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백경》은 인간의 욕망을 냉정하게 드러낸다. 에이해브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만, 그 목표는 점차 공동체 전체를 파멸로 이끈다.

현대 사회의 경쟁과 집착, 성취의 압박 속에서 이 서사는 낯설지 않다. 목표가 삶을 밝히는 등불이 아니라 집착의 화염이 될 때 인간은 방향을 잃는다.


황석영 같은 현실의 비극과 인간 군상을 오래 응시해 온 작가에게, 이 이야기는 단순한 모험담이 아니라 인간사의 원형적 은유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 작품이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까닭은 살아남는 자의 위치에 있다. 이슈메일은 싸우지 않는다. 관찰하고 기록한다. 끝내 바다 위에 떠남으로써 이야기를 전한다.

여기서 문학의 본질이 드러난다. 세계를 정복하는 자가 아니라, 세계를 증언하는 자가 남는다. 작가로 살아온 이에게 이 메시지는 운명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백경》은 인간이 세계와 자신을 동시에 바라보게 만드는 거울이다. 그것은 속도를 멈추게 하고, 깊이를 요구하며, 질문을 남긴다. 그래서 한 작가는 젊은 날로 돌아가면 그 책을 들고 고요 속에 머물고 싶다고 말했을 것이다.

《백경》은 읽히는 책이 아니라, 인간을 멈춰 세워 스스로를 응시하게 만드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 멈춤의 시간 속에서 독자는 비로소 항해의 방향을 다시 묻게 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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