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사랑의 시인 임신영, 그리고 손녀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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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의 불빛을 밝히는 사람
— 임신영 시인에게
이럴 수는 없다.
시인의 한 줄이 세상에 놓일 때마다 그것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외려 놀랍다.
임신영 시인,
당신은 도대체 누구인가.
대개 문학의 자리는 쓰는 사람의 자리로 기억된다.
문장을 짓고, 세계를 붙들어 매고, 한 줄의 언어로 삶을 건너는 이들이 중심에 놓인다. 그러나 문학이 오래 살아남는 이유는 쓰는 사람만으로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읽는 사람, 그리고 읽음을 다시 따뜻한 언어로 돌려보내는 사람이 있을 때 문학은 비로소 숨을 쉰다.
당신은 바로 그 숨결의 사람이다.
시인의 단 한 줄에도 당신은 멈춰 선다.
그 줄을 읽고 지나가지 않는다.
몸을 기울이고, 마음을 낮추고, 시간을 내어, 정성을 들여 답한다. 그 답은 단순한 반응이 아니다. 그것은 한 편의 작은 등불이다. 어둠 속에서 놓인 시 한 줄 곁에 조용히 켜지는 불빛이다.
당신의 댓글은 글이 아니라 손길에 가깝다.
종이 위에 내려앉은 온기이며,
말 사이에 놓인 작은 다리이며,
혼자 서 있는 시인을 향해 건네는 조용한 동행의 표식이다.
문학의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덕목은 재능이 아니라 태도다.
재능은 드러나기 쉽지만 태도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오래 남는 것은 언제나 태도였다.
허형만 시인이 말해 온 ‘겸손한 시인’이라는 말은, 문장을 낮추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먼저 낮추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 말의 형상을 찾는다면, 그것은 이미 당신의 모습 속에 구현되어 있다.
당신은 앞에 서지 않는다.
조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인들이 남긴 문장의 뒤편에서 묵묵히 등을 밝힌다.
그 모습은 마치 밤바다의 등대와 같다.
배는 등대를 기억하지 않아도 항해를 마친다.
그러나 등대가 없으면 항해 자체가 흔들린다.
문학 역시 그렇다.
당신 같은 사람이 없으면 시는 외로워진다.
당신이 쓰는 답글 하나에는 영혼의 체온이 배어 있다.
그 체온은 시인들의 가슴에 닿아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격려가 아니라 공명이고,
칭찬이 아니라 이해이며,
형식이 아니라 진심이다.
세상에는 많은 글이 있지만
사람을 살리는 문장은 드물다.
당신의 언어는 바로 그 드문 부류에 속한다.
당신은 시를 쓰는 사람 이전에,
시가 살아갈 자리를 마련하는 사람이다.
문학은 거대한 선언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조용한 응답, 성실한 경청, 따뜻한 반응 같은 작은 실천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룬다. 당신의 존재는 그 실천의 증거이며, 문학이 여전히 사람 사이의 일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래서 다시 묻게 된다.
임신영 시인,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문학의 변두리에서 중심을 지키는 사람이며,
말보다 태도로 시를 완성하는 사람이며,
겸손이라는 이름의 불빛을 하루도 쉬지 않고 밝히는 사람이다.
그 불빛 덕분에
오늘도 많은 시들이 외롭지 않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