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의 무게를 아는 마음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작은 것의 무게를 아는 마음


김왕식





길을 걷다가 예배당 벽면에 걸린 작은 글귀를 본다.

“나에게 하찮은 것이
누군가에게는 전부입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짧은 문장인데도 오래 바라보게 된다. 많은 말을 하지 않는데도 마음의 깊은 곳을 건드린다. 그 자리에서 문득 삶의 무게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람은 대개 자신의 필요를 중심으로 사물을 판단한다. 손에 익숙한 것, 쉽게 얻은 것,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은 가볍게 여긴다.
그러나 세계는 각자의 결핍 위에서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진다.
어떤 이에게는 낡은 책 한 권이 세상을 향한 유일한 창문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하루를 버티게 하는 따뜻한 한 끼가 전부가 되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에게는 무심코 건넨 한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을 붙들어 주는 버팀목이 되기도 한다. 가치의 크기는 대상의 크기에 있지 않다. 그것이 놓인 자리의 절실함에서 결정된다.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시선이 달라진다. 무심히 지나치던 행동 하나가 더 이상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말의 온도, 손짓의 배려, 잠시 멈추어 귀 기울이는 태도까지도 누군가의 하루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세상은 거대한 사건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작고 조용한 접촉에서 더 자주 변한다. 그래서 인간의 품격은 눈에 띄는 성취보다 사소해 보이는 것을 어떻게 대하는가에서 드러난다.

삶은 언제나 가치의 역전을 경험하게 한다. 당연하게 누리던 것이 어느 날 가장 간절한 것이 되기도 한다. 건강이 그렇고, 곁에 있던 사람이 그렇고, 사소한 일상이 그렇다.

그때 비로소 깨닫는다.

하찮다고 여긴 판단은 대상의 본질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에서 비롯된 착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깨달음은 사람을 낮추고 마음을 넓힌다. 타인의 필요 앞에서 함부로 판단하지 않게 만든다.

내게 남는 것을 나누는 일은 거창한 도덕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내가 가진 작은 것이 누군가에게 부족함을 메워 준다면 그 연결의 순간에서 공동체의 의미를 체험하게 된다. 서로의 전부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태도 속에서 관계는 따뜻해진다. 사회 또한 그러한 마음 위에서 단단해진다.

삶의 깊이는 결국 작은 것을 보는 눈에서 시작된다. 하찮아 보이는 것의 무게를 헤아릴 줄 아는 마음이 사람을 넓게 만든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거대한 것을 얻는 일이 아니라 작은 것 속에 담긴 전부의 의미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성당 벽의 문장을 떠올리며 다시 길을 걷는다. 발걸음이 조금 조심스러워진다. 내게 스쳐 지나가는 것 하나도 누군가에게는 삶의 중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 일, 그것이 일상을 수상으로 바꾸는 태도라고 느낀다. 그 기억이 마음을 다듬고 하루를 밝히는 작은 등불이 된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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