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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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도(酒道)
— 몸을 비우고 마음을 가다듬는 한 방식
김왕식
내게 술자리는 익숙지 않다.
허나,
술자리가 예정된 날이면 스스로에게 하나의 절차를 마련해 둔다. 그것은 단순히 술을 마시는 준비가 아니라, 하루의 결을 정리하고 몸과 마음을 일정한 상태로 다듬는 의식이다.
삶을 살아가며 각자가 지켜 온 작은 규율이 있듯, 이 방식 또한 세월 속에서 다져진 나만의 주도론이라 할 만하다.
술자리 약속이 있는 날이면,
아침의 목욕으로 하루를 연다. 물이 몸을 지나가는 동안 불필요한 생각을 함께 씻어 낸다. 이는 단순한 청결의 행위가 아니라 감각을 맑히는 준비다. 점심을 비우는 일 역시 같은 맥락에 놓인다.
배를 채우지 않음으로써 저녁의 한 잔이 지니는 감각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함이다. 몸을 비우는 행위는 곧 의식의 여백을 마련하는 일이다. 여백이 있어야 경험이 또렷이 새겨진다.
옷차림에도 나름의 질서를 둔다. 속옷부터 흰색으로 갈아입고, 흰 셔츠에 노타이, 재킷을 더한다.
이는 과시의 장식이 아니다. 자리를 향한 예의를 갖추는 태도이며, 만남을 하나의 의례로 받아들이는 자세다. 술자리는 우연히 흘러가는 시간이 아니라 타인과 마음을 나누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외형의 단정함은 내면의 집중을 돕는다.
술상 앞에 앉으면 절제가 시작된다. 안주를 먼저 들지 않는다. 술이 먼저 몸 안으로 들어와 길을 열도록 기다린다. 참치 몇 점으로 충분하다. 과함을 경계하는 선택이다. 소주 한 잔은 화려하지 않으나 정직하다. 목을 지나 창자를 쓸어내리는 쓰림 또한 받아들인다.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감각을 깨우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즐거움만 취하려 하지 않고, 쓰라림까지 함께 경험하는 태도가 이 의식의 핵심이다.
주량은 반 병에서 한 병 사이에 머문다. 한계를 정해 두는 일은 스스로를 지키는 방식이다. 흐름이 더 이어질 수 있음에도 두 번째 자리를 삼가는 까닭 역시 여기에 있다. 의식은 반복되어야 의미가 있으나, 동시에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절제가 깨지는 순간 의식은 단순한 소비로 전락한다. 그러므로 한 번의 자리를 온전히 마치고 돌아오는 길을 택한다.
이러한 방식은 술을 즐기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의 축소판에 가깝다.
준비하고, 비우고, 절제하며, 정해 둔 경계 안에서 경험을 음미하는 일. 그것은 술을 넘어서 일상의 균형을 유지하는 훈련이 된다. 한 잔의 시간이 지나간 뒤에도 남는 것은 취기가 아니라 스스로를 관리해 왔다는 조용한 확신이다.
주도酒道란 주량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를 존중하고 자신을 통제하며 순간을 품위 있게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술은 흘러가지만 태도는 남는다. 그렇게 지켜 온 의식 속에서 한 인간의 시간은 흐트러지지 않고, 삶의 결은 조용히 정돈된다.
1992, 10, 22
ㅡ 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