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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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거울 앞에서
생각의 뿌리가
어둠 속으로 길어질 때
머리는 하늘을 향하지만
마음은 오래 가라앉는다
시간이 발목에 쌓이고
침묵이 등을 덮는다
그때 비로소
하늘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려앉는 것임을 안다
푸른 무한이
눈동자 속에 깃드는 순간
세계는 넓어지는 대신
조용히 투명해진다
발끝 가까이
시냇물이 하나의 문장을 펼친다
물결은 글자처럼 흘러
빛을 읽게 한다
그 속에
또 하나의 하늘이 놓여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우주와
아래에서 떠오르는 우주가
서로를 비추며
존재를 가운데 세운다
明鏡止水
거울이 맑은 것이 아니라
욕망이 사라진 자리의 이름
돌 하나도
구름 하나도
그 자리에서는
지나가는 호흡
무심함이란
세상을 버리는 일이 아니라
세상이 스스로 흐르게 두는 기술
行雲流水
붙잡지 않는 손끝에서
시간이 꽃처럼 피어나는 방식
나는 이제
이루려 하지 않는다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흐르는 것에 귀를 대고
비치는 것에 눈을 맡긴다
하늘이 물에 잠기고
물이 하늘을 들어 올릴 때
존재는 무게를 잃고
침묵은 하나의 별이 된다
오늘
마음은 경계 없는 수면 위에 놓여
우주를 흔들지 않는다
이 고요
이름 없는 이 평정
잠시 인간으로 머무는
영원의 형태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