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아침에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설날 아침에





“까치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어린 시절, 설날 아침은 이 노랫소리로 먼저 열리곤 했다. 아직 해가 마루 끝까지 들지 않았는데도 마음은 이미 밝았다. 부엌에서는 떡국 끓는 냄새가 오르고, 마당에는 서리가 옅게 남아 있고, 어른들은 새 옷을 여미며 서로의 얼굴을 한 번 더 바라보았다. 그때 노래는 말한다. 어제는 까치의 설날이고, 오늘은 우리의 설날이라고.

왜 설날을 굳이 이틀로 나누었을까. 왜 수많은 날짐승 가운데 까치를 세워 두었을까.

설날은 하루로 끝나는 날이 아니다. 그 전날부터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장을 보고, 집을 쓸고, 묵은 감정을 정리하고, 멀어진 이에게 안부를 생각한다.

새해는 달력의 숫자가 바뀌는 순간에만 오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이 정돈되는 그 시간부터 이미 시작된다. 어제는 그런 시간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준비와 예감의 시간. 까치는 그 시간을 상징한다. 사람보다 먼저 계절을 느끼고, 집 앞 나무 위에서 맑은 소리로 “좋은 소식이 온다”라고 알리는 새. 그래서 노래는 어제를 까치의 설날이라 부른다.

까치는 늘 사람 사는 자리 가까이에 있다. 담장 너머에서, 논둑 위에서, 큰 나무 가지 끝에서 우리를 바라본다. 멀리 있는 학도 아니고, 철 따라 떠나는 제비도 아니다. 마을과 함께 숨 쉬는 새다. 설날이 가족의 날이듯, 까치는 마을의 새다. 그 울음은 크지 않지만 또렷하다. 새해의 문을 살며시 두드리는 소리 같다. 그래서 많은 날짐승 중에서도 까치가 노래 속에 남았다. 가장 화려해서가 아니라, 가장 곁에 있어서다.

동요는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며 설날을 더 가깝게 만든다. “까치까치”라는 반복은 마치 작은북을 두드리는 소리 같다. 그 리듬 속에 새해의 설렘이 담긴다. 어제부터 이미 시작된 기쁨이 오늘에 이르러 이름을 얻는다. 그러니 까치설날이 하루 앞선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니다. 새해는 늘 예감으로 먼저 오기 때문이다.

이제 오늘, 우리의 설날이다. 떡국 한 그릇에 나이를 더하고, 세배 한 번에 마음을 낮춘다. 오래 못 본 얼굴을 떠올리고, 미안했던 일을 조용히 덮어 둔다. 설날은 잘 사는 법을 다짐하는 날이 아니라, 서로를 다시 품는 날이다. 복은 멀리서 오지 않는다. 따뜻한 인사 한 마디에서, 손을 맞잡는 온기에서 시작된다.

창밖에 까치가 울지 않아도 좋다. 그 울음은 이미 우리 마음속에 있다. 어제의 예감이 오늘의 축복이 되었으니, 남은 것은 서로에게 건네는 말뿐이다.


명절 잘 쇠십시오.
몸도 마음도 평안하시고, 새해에는 웃을 일이 더 많으시기를 바랍니다.
까치가 먼저 울어 주었으니, 이제 우리의 설날이 환하게 열렸습니다.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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