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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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결
늦은 오후였다.
창밖에는 겨울 끝자락의 바람이 나뭇가지를 가늘게 흔들고 있었다.
찻잔에서 오르는 김이 느리게 풀어지며 방 안을 맴돌았다.
달삼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 품격 있는 사람은 왜 그렇게 말이 적습니까?
요즘은 가만히 있으면 손해 보는 세상 아닙니까.”
선생은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잠시 창밖을 바라보았다.
해가 기울며 하늘의 빛이 낮게 내려앉고 있었다.
“달삼아, 말이 적은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달삼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침묵하면 오해를 받습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른다고,
무언가 숨긴다고…”
선생은 잔을 내려놓았다.
“침묵을 해명하려 드는 순간,
이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이 분명하면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달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요즘 자신이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괜히 분위기를 채우려 했던 말들,
인정을 받고 싶어 덧붙였던 문장들.
“선생님, 왜 모두에게 사랑받으려 하지 말라고 하십니까?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지 않습니까.”
선생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마음이 기준을 낮추게 해서는 안 된다.
모두에게 맞추다 보면
결국 자기 자신을 잃는다.”
달삼은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다
자신의 생각을 접어두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럼 험담은요.
가끔은 화가 나서… 말하지 않으면 속이 답답합니다.”
선생은 조용히 말했다.
“남을 험담하는 순간,
그 말은 먼저 자신의 얼굴을 긁는다.
타인을 낮추어 자신을 세우는 사람은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이다.”
방 안의 공기가 고요해졌다.
달삼은 더 이상 말을 재촉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억지로 어울리지 않으십니다.
혹시 외롭지 않습니까.”
선생은 희미하게 웃었다.
“억지로 어울리면 더 외롭다.
마음이 맞는 자리에서는 오래 머물고,
아닌 자리에서는 조용히 물러나는 것.
그것이 스스로를 존중하는 일이다.”
달삼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노을이 유리창에 길게 번지고 있었다.
“친절하면 만만하게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친절은 약함이 아니다.
단단하기 때문에 부드러울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이 흔들리면
부드러움은 흉내에 불과하다.”
달삼은 그 말을 곱씹었다.
그동안 자신이 말로 공간을 채우려 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침묵이 불편해 서둘러 꺼낸 농담들,
괜히 분위기를 맞추려 던진 가벼운 말들.
선생이 천천히 덧붙였다.
“품격은 드러내려 애쓰지 않는다.
모든 것을 공개하지 않는다.
말로 공간을 억지로 채우지 않는다.
모두에게 사랑받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기준을 낮추지 않는다.”
달삼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말이 적은 사람이 차가운 것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고요한 것임을
비로소 이해한 듯했다.
방 안에는 긴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그 침묵은 불편하지 않았다.
선생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품격은 소리 높이지 않아도 드러난다.
태도는 설명하지 않아도 보인다.”
달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보다 깊은 무엇이 방 안에 남아 있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그러나 쉽게 배우지 못하는
침묵의 힘이었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