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깊어 ㅡ 김미루 시인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김미루 시인





생각이 깊어




시인 김미루






북한강을 떠날 즈음
커튼이 쳐져 있지 않은 휑한 거실에
이른 새벽부터 강 건너 여린 햇살이 슬며시 건너와 몸을 기댔다.

청평댐이 내려다보이던 집필실에서
잔잔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여릿여릿 회상에 잠겨본 날들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문득, 러시아의 대문호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작품 ‘닥터 지바고’가 생각났다.

‘유리아틴’의 도서관에서 '라라'를 만나고
눈으로 뒤덮인 '바리키노'에서의 고단한 피난의 삶.

늑대 울음 소름 끼치던 설경 속의 새벽녘
'지바고'는 촛불을 켜고 '라라'를 위한 시(詩)를 썼다.
난, 지금도 그 아름다운 시(詩)를 기억한다.

난 이곳에서 북한강의 기운을 받아 책 한 권 분량 나의 흔적을 남겼다.
그것이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이었다. 비록 졸문이었지만,
지난 감성들이 내 목젖에서 절절히 흐르는 알코올기에 섞여
목에서 자꾸 걸렸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며칠 전,
잔설이 남아 있던 덕수궁 고궁의 길을 “뽀드득, 뽀드득” 소리를 내며 걸었다.
여전히 바람은 찼지만,
우연하게도, 석조전에서 유명 작고 화가들의 ‘고향’ 작품을 마주하였다.
마치 내가 추억의 시골 고향 사립문 안을 들여다보는 듯하였다.

오늘은 도심의 거리에서 무심코 방황하였다. 꽤 오랜 시간이었다.
내가 서 있는 거리는 주소도 없는가 보다.
이렇듯 철없이 한 동안을 헤매었으니,

모처럼 오후에 바람이 멎었다. 귓전에 살랑이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
이제 남은 내 삶의 몫은 양평에 ‘작가 마을’을 조성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들른 양평 치유의 숲 자락에 붙어 있는 삭막하고 황량한 땅은
여전히 겨울의 체온을 품고 있었다.

자작나무가 띄엄띄엄 서 있던 해가 오래 머무는 언덕
흙이 알몸으로 드러난 자리에 노란빛을 머금은 복수초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이 땅에 ‘작가 마을’을 세울 것이다.

이제 詩처럼 살면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것이다.

“혹독한 겨울을 버텨내면 좋은 봄날이 올까?”

- 미루 -









강을 건너는 사유, 겨울을 통과하는 문장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오늘 오후,


참 좋은 벗, 미루 시인

우거寓居
청람 메일에 들렀다

호사豪奢한 날이다]


김미루 시인의 <생각이 깊어>는 한 편의 산문시이자, 한 시인의 자서적 고백에 가깝다.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청평서루의 고즈넉한 집필실에서 그는 강을 바라보고, 강을 건너고, 다시 자기 안으로 돌아온다. 이 작품은 단순한 회상의 기록이 아니다. 장소를 매개로 삶의 방향을 묻는 문학적 성찰이다.

이른 새벽, 커튼 없는 거실로 건너오는 여린 햇살은 이 글의 첫 번째 상징이다. 햇살은 강을 건너와 몸을 기댄다. 그것은 자연의 빛이자, 과거의 시간이며,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내일이다. 김미루는 공간을 단순히 배경으로 두지 않는다. 강은 흐름이며, 시간이며, 기억의 통로다. 잔잔히 흐르는 북한강을 바라보며 여릿여릿 회상에 잠겼던 날들. 그 회상은 감상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존재를 다시 꺼내어 보는 행위다.

그가 문득 떠올린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는 우연한 인용이 아니다. 눈 덮인 ‘바리키노’의 설경 속에서 촛불을 켜고 시를 쓰던 지바고의 장면은 곧 김미루 자신의 자화상이다. 혹독한 설원 속에서도 시를 멈추지 않았던 지바고처럼, 북한강의 기운을 받아 책 한 권의 흔적을 남긴 자신의 시간과 겹쳐진다.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이라는 제목 속에는 이미 그의 삶의 가치철학이 담겨 있다. 길은 멀어도, 마음은 멀어지지 않는다는 믿음. 육체의 이동보다 중요한 것은 정신의 방향이라는 인식이다.

덕수궁의 잔설 위를 “뽀드득, 뽀드득” 걸어가는 장면은 또 다른 층위를 연다. 고궁의 길은 역사이며, 석조전에서 마주한 ‘고향’ 작품들은 기억의 문을 연다. 그는 전시된 그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립문 안을 들여다보듯 자신의 과거를 응시한다. 이 지점에서 김미루의 미의식은 분명해진다. 예술은 외부의 장면이 아니라, 내면의 귀향이다.

도심에서 주소 없는 거리 위를 방황하는 모습은 현대인의 초상을 닮았다.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확인하지 못한 채 한동안 헤매는 시간. 그러나 그는 그 방황을 부정하지 않는다. 외려 그 방황을 통과해야 다음 걸음이 가능함을 안다. 바람이 멎은 오후, 귓전에 들리는 미세한 숨결처럼, 사유는 고요 속에서 깊어진다.

양평에 ‘작가 마을’을 조성하겠다는 다짐은 단순한 계획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후반부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선언이다. 삭막하고 황량한 땅, 아직 겨울의 체온을 품고 있는 언덕. 그 위에 띄엄띄엄 선 자작나무와 노란 복수초. 이 장면은 김미루의 정신적 풍경이다. 겨울을 통과한 자리에서 봄을 준비하는 태도. 황량함 속에서도 복수초의 얼굴을 읽어내는 눈. 그 눈이 곧 시인의 눈이다.

“이제 詩처럼 살면서 /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갈 것이다.”

이 결연한 문장은 그의 자의식이자, 고독에 대한 긍정이다. 그는 관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궁극의 길은 혼자 걸어야 함을 안다. 바람처럼 얽매이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흔들리지 않겠다는 다짐은 외로운 결심이 아니라 단단한 자유다.

마지막 물음, “혹독한 겨울을 버텨내면 좋은 봄날이 올까?”는 단순한 기대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이다. 그는 강을 바라보며, 설원을 떠올리며, 잔설 위를 걸으며, 겨울을 통과해 왔다. 그러므로 이 물음은 의심이 아니라 다짐이다.

김미루 시인의 <생각이 깊어>는 풍경을 빌려 자기 삶을 성찰한 작품이다. 강은 흐르고, 눈은 녹고, 복수초는 피어난다. 그는 그 변화의 결을 읽으며 자신을 다시 세운다.

문장은 과장되지 않으나 깊다. 회상은 감상에 머물지 않으며, 계획은 허황되지 않다. 이 글은 결국 한 시인이 강을 건너 자기 안으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노정의 끝에서 그는 묻는다. 겨울을 견디면 봄은 오는가. 그 질문 자체가 이미 봄을 준비하는 사람의 목소리다.


ㅡ청람

□ 김미루 시인의 역작 《길은 멀어도 마음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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