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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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문 깃발 아래
아파트 외벽은
층층이 쌓인 침묵이다
베란다마다 유리창이 빛나지만
태극기는
열 집에 한두 집
드문드문 걸려 있다
바람은 모두에게 불어오는데
깃발은 몇 집에서만
가슴을 편다
오늘이 무슨 날이냐고
아이 하나 묻는다
휴일이라 좋다는 말은 있어도
왜 쉬는지에 대한 대답은
창문처럼 닫혀 있다
기미독립선언
그날은 종이 위 문장이 아니라
빼앗긴 하늘 아래서
사람이 사람의 이름을 되찾은 순간이었다
유관순의 나이는
열일곱이라는 숫자였으나
그 떨림은
한 나라의 심장 박동이었다
지금 우리의 평온은
그 박동 위에 세워진
콘크리트의 안식이다
삼일은
달력의 칸이 아니다
침묵을 찢고 올라온
봄의 첫 외침이다
드문 깃발을 바라보며
묻는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천 한 장인가
아니면
그날의 온도인가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태극기 한 장이
베란다 끝에서 흔들릴 때
바람은 말한다
잊지 말라고
잊는 순간
나라는 작아진다고.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