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애국심은 무엇으로 드러나는가?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바람에 흔들리는 것




아파트 단지를 걷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층층이 이어진 창문들 사이로 태극기가 드문드문 걸려 있었다. 열 집에 한두 집쯤 될까. 바람은 모든 창을 똑같이 스치고 지나가는데, 깃발은 몇 곳에서만 조용히 흔들렸다.


그 풍경 앞에서 이상하게도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진정한 애국심을 지닌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국경일이면 태극기를 빠짐없이 다는 사람일까. 국가대표 경기를 보며 가슴이 뜨거워지는 사람일까. 혹은 역사 기념일마다 가장 앞에 서서 구호를 외치는 사람일까. 그런 모습도 분명 애국의 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애국심이 오로지 표현에만 머문다면, 그것은 하루짜리 감정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애국은 감정보다 오래가는 태도에 가까운 것 같다.
기미독립선언의 날을 떠올려 보면, 그날의 사람들은 거창한 이론보다 단순한 결심 하나를 품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다.” 그 한 문장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섰고, 감옥으로 끌려갔다. 유관순의 나이는 숫자로는 열일곱이었지만, 그 선택은 나이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외침은 과장이 아니라 삶의 태도였다.


생각한다.

진정한 애국심은 나라를 크게 말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고. 외려 나라를 이루는 작은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데서 시작된다고.


법을 지키는 일, 약자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일, 공공의 질서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일. 세금을 정직하게 내고, 약속을 지키고, 공동의 공간을 깨끗이 사용하는 일. 이런 사소한 일들이 모여 나라의 품격을 만든다. 애국은 거창한 구호라기보다 일상의 윤리에 가깝다.


또 한 가지는 기억이다.
6·25 전쟁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날짜를 떠올리기보다 그 시대를 떠올려야 한다. 전쟁은 숫자가 아니라 상처였고, 가족의 이름을 잃은 밤이었다. 삼일절 역시 달력의 한 칸이 아니라, 자유가 저절로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날이다.


아이들이 “삼일절이 뭐예요?”라고 물을 때, 우리는 시험 문제처럼 짧게 답할 것인가, 아니면 그날의 의미를 천천히 이야기해 줄 것인가. 진정한 애국심은 바로 그 장면에서 드러난다.

과장하지 않고, 그러나 진지하게 설명해 주는 마음. 다음 세대가 이 나라를 스스로 이해하도록 돕는 책임.
애국은 나라의 잘못까지 덮어두는 것이 아니다.

더 나은 방향을 바라는 마음이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용기, 공정함을 요구하는 태도, 불편하더라도 정의를 선택하는 결단.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라를 향해 질문할 줄 아는 용기를 포함한다.


다시 아파트를 올려다본다.

드문드문 걸린 태극기가 바람에 흔들린다. 깃발이 적다고 해서 애국심이 사라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그 마음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라도 단단히 서 있기를 바랄 뿐이다.


진정한 애국심을 지닌 사람은 아마도 요란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책임을 다한다.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고, 공동체의 이익을 생각하며, 역사를 왜곡하지 않고 기억한다. 그의 애국은 하루의 의식이 아니라, 평생의 태도다.


태극기는 바람에 흔들리지만, 애국심은 양심 위에 선다.
그 양심은 오늘도 우리 각자의 일상 속에서 조용히 시험을 받고 있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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