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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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ㅡ비로부터 봄ㅡ바람에로
김왕식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 했다
The Waste Land에서
죽은 뿌리를 흔들어
기억을 피워 올린다고
봄은 늘
다정하게 오지 않는다
먼저
비로 와
잠들어 있던 상처를
젖게 한다
마른 흙 속에 묻어 둔
오래된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내어
씨앗의 등을
거칠게 두드린다
“일어나라”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명령에 가깝다
사월의 비는
망각을 허락하지 않는다
잊고 있던 슬픔까지
싹으로 밀어 올린다
하여
봄은
때로 잔인하다
허나
비가 지나간 자리에서
바람이 온다
젖은 시간을 말리며
흔들림을 가르친다
풀잎은 떨면서 서고
나무는 흔들리며 자란다
비가 기억을 깨웠다면
바람은 그 기억을
빛 쪽으로 기울인다
황무지에도
필경
물과 바람이
차례로 지나가야
푸른 것이 난다
봄비로부터
봄바람에로
잔인함을 통과한 자리에서만
초록은
자기 이름을 얻는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