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서 다시 읽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어느 소설가는 말했다.
무인도에 단 한 권의 책을 가져갈 수 있다면 《안나 카레니나》를 들고 가겠다고.
이 말은 과장이 아니라 고백에 가깝다. 이 소설은 줄거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게를 지닌다. 그것은 단지 한 여인의 비극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전체를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흔히 불륜과 파멸의 이야기로 읽힌다. 얼핏 보면 사랑의 도덕적 실패를 다룬 작품처럼 보이고, 어떤 독자에게는 외설적 감정의 서사로 비칠 수도 있다. 실제로 사랑과 욕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장면들은 당시에도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지금 읽어도 낯설지 않다.
허나 이 작품을 단순히 외설의 범주에 두는 순간, 우리는 그것이 겨냥하는 더 깊은 층을 놓치게 된다.

문학성과 외설성의 경계는 언제나 불안정하다. 한국문학에서도 한때 마광수의 소설들이 그러했듯, 욕망을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은 종종 도덕의 이름으로 의심받는다.
문학은 언제나 인간의 전부를 다루려 한다. 욕망을 삭제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보여 주는가이다. 외설이 욕망을 소비하게 만든다면, 문학은 욕망을 성찰하게 만든다.

《안나 카레니나》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자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과 사회 사이에서 얼마나 쉽게 갈라지는지를 보여 주는 장치다. 안나는 처음부터 파멸을 향해 달려가는 인물이 아니다. 그녀는 가장 안정된 삶을 가진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 안정은 감정이 없는 평온이었고, 질서 속의 침묵이었다. 브론스키와의 만남은 단순한 유혹이 아니라, 억눌려 있던 자아가 처음으로 자신을 자각하는 순간이었다.

톨스토이는 이 사랑을 낭만적으로 미화하지 않는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안나는 자유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더 좁은 세계에 갇힌다. 사회는 그녀를 배척하고, 그녀는 점점 더 브론스키의 시선에 매달리며 자신을 잃는다. 사랑은 해방이 아니라 의존으로 변하고, 의존은 곧 공포로 바뀐다. 톨스토이가 보여 주는 것은 사랑의 도덕적 타락이 아니라 사랑의 심리적 구조다.

이 지점에서 《안나 카레니나》는 외설과 멀어진다.
외설은 대개 행위 자체를 확대하지만, 톨스토이는 행위보다 의식을 확대한다. 그는 욕망을 자극하지 않고 해부한다. 안나의 불안, 질투, 고립, 자기혐오가 점점 깊어지는 과정은 단순한 사건의 전개가 아니라 인간 의식의 미세한 균열을 따라가는 기록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자극적이기보다 냉정하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이 작품이 안나의 이야기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레빈의 서사는 전혀 다른 차원의 질문을 제기한다. 그는 사랑과 결혼, 노동과 신앙, 삶의 의미를 끊임없이 묻는다. 안나가 감정의 절대성을 믿고 무너진다면, 레빈은 의심 속에서 천천히 삶의 중심을 찾는다.
톨스토이는 이 두 서사를 병치함으로써 인간 삶의 두 방향을 동시에 보여 준다.

하여,《안나 카레니나》의 문학성은 줄거리보다 구조에서 드러난다.
이 작품은 하나의 사건을 향해 달려가는 소설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여러 가능성을 동시에 펼쳐 보이는 소설이다. 톨스토이는 어떤 삶이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얼마나 모순된 존재이며, 그 모순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 애쓴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오늘 다시 읽어 보면, 이 작품은 더욱 현재적이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려 하고, 동시에 그 사랑 때문에 불안해한다. 사회적 시선과 개인적 욕망 사이에서 흔들리는 일도 여전하다. 그런 점에서 안나는 과거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의 인간형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외설의 소설이 아니라 인간의 소설이다.
욕망을 숨기지 않되 그것을 넘어 인간의 심연을 보여 주는 작품. 그래서 어떤 이는 무인도에 이 책을 들고 가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이 소설은 읽는 이를 자극하지 않고 오래 붙든다.

묻는다.
우리는 사랑 속에서 무엇을 찾고 있으며, 끝내 무엇으로 살아가려 하는가.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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