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터의 봄 ㅡ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흉터의 봄


청람 김왕식




그해 봄,
내 왼쪽 뺨에 생긴 작은 함몰은 상처라기보다 뒤늦게 피어난 한 개의 표정처럼 오래 남았다.

하늘 아래 첫동네다.

마을이기보다 하나의 숨결에 가까웠다. 산 아래 맨 먼저 붙어 있는 집 몇 채가 바람과 흙과 햇빛 사이에 조용히 기대어 있던 자리. 세상은 분명 저 너머에 있었으나, 그곳까지 닿기 전에 길은 늘 한 번 숨을 고르고, 사람들은 한 번 하늘을 올려다보아야 했다.

새벽이면 닭 우는 소리가 가장 먼저 지붕 위에 내려앉았고, 외양간의 짐승들은 아직 어둠을 다 떨치지 못한 숨을 내쉬었다.
물동이 부딪는 소리, 아궁이 속 장작 타는 냄새, 먼 들로 나가는 어른들의 발자국이 차례로 아침을 밀어 올렸다. 나는 그런 마을에서 태어나 흙먼지를 피부의 한 겹처럼 두르고 자랐다.

학교는 그 마을 바깥에 있었다.
길로는 3 킬로 남짓이었으나, 어린아이의 종아리로는 하루의 절반을 꺼내 들고 가야 닿는 거리였다. 고개를 넘고, 물길을 건너고, 다시 풀 무성한 언덕을 돌아야 했다.
봄에는 진달래가 산비탈을 불태우고, 여름에는 키 큰 풀들이 길을 반쯤 삼키고, 겨울에는 누군가 먼저 밟아 둔 발자국이 유일한 지도였다.

나는 두 살 많은 누나와 함께 그 길을 다녔다. 누나는 늘 앞서 걸었고, 나는 누나의 뒤꿈치를 놓치지 않으려 종종걸음을 쳤다. 누나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마음이 푹 꺼졌고, 다시 보이면 세상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 나이의 나는 세상을 먼저 배우기보다 누나의 등을 먼저 읽고 있었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학교는 내게 대륙처럼 넓고 타국처럼 시끄러운 곳이었다. 집에서는 닭 울음과 어른들 짧은 말소리만 듣던 아이가 갑자기 수십 개의 웃음과 수백 개의 발소리, 종소리와 먼지와 햇볕 한가운데로 던져졌으니 그럴 만도 했다. 교실에는 분필가루가 날렸고, 칠판에는 다 지워지지 않은 글자의 유령이 희끗하게 남아 있었다.

점심시간만 되면 학교는 공부의 장소가 아니라 야생의 왕국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은 뛰고, 밀고, 구슬을 튕기고, 줄을 돌리고, 창틀에 매달려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들 한복판에서 나는 자주 멈춰 섰다. 어디에 몸을 두어야 할지, 어느 쪽 웃음에 끼어들어야 할지, 무엇을 갖고 싶어 해야 하는지조차 잘 모르는 얼굴로.

운동장 한쪽에는 그네가 두 개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네는 놀이기구라기보다 어린 시절의 왕좌였다. 철기둥에 쇠사슬이 걸려 있었고, 그 끝에는 닳아 반들거리는 나무판이 매달려 있었다. 앉으면 삐걱거렸고, 크게 타면 쇠기둥까지 떨렸다.
그 위에 오르면 발밑의 흙이 순식간에 아래로 꺼지고, 바람이 먼저 얼굴을 가져갔다. 높이 올라갈수록 아이들은 하늘을 조금씩 소유한 듯했다.
누구나 그네를 타고 싶어 했다. 아니, 그네를 차지하고 싶어 했다.

문제는 그네가 두 개뿐이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은 많았고, 욕심은 더 많았다. 상급생들은 이미 자기의 땅이라도 되는 양 그네에 올라 있었고, 아래 학년 아이들은 둘레에 서서 차례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그 차례라는 것은 늘 소문처럼만 존재했다.

누군가 “이제 내 차례야” 하고 입술을 달싹이면, 더 큰 아이가 못 들은 척 발을 더 세게 내밀었다. 나는 여러 날 그 풍경을 보았다. 그네는 언제나 손에 닿을 듯 닿지 않았다. 닿지 않는 것은 이상하게도 더 찬란해 보인다.

그날도 나는 그네 앞에 서 있었다.
누나는 친구들과 운동장 반대편에서 놀고 있었고, 나는 혼자였다.
어린아이에게 혼자라는 것은 빈 주머니 같은 것이다. 손을 넣어도 잡히는 것이 없고,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는 심정만 남는다. 상급생들이 그네를 높이 올릴수록 그들의 얼굴은 햇빛을 받아 더 단단해 보였다.

쇠사슬은 끼익, 끼익, 마치 오래된 문짝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냈다. 나는 그 움직임을 넋 놓고 보았다. 그네는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바람을 낳았고, 뒤로 물러날 때마다 다시 아이의 욕망을 끌어당겼다.
기다림에도 냄새가 있다면 그날의 기다림에서는 마른 흙냄새가 났을 것이다.
어차피 내 차례가 오지 않을 것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혹시 누군가 내려오거나, 선생님이 와서

“작은애도 한번 태워 줘라”

하고 말해 주거나, 잠깐의 틈이 생겨 내가 나무판 위에 올라설 수 있으리라 믿는 기다림.
나는 발끝으로 흙을 긁으며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갔다. 몇 발짝 떨어져 있다가, 한 발짝, 그다음엔 거의 그네의 궤도 안쪽까지.

지금 돌아보면, 아이는 늘 닿지 못하는 것 가까이에 얼굴을 들이미는 존재였다. 상실을 모르기 전에 욕망을 배우고, 위험을 알기 전에 빛나는 것부터 따라간다. 나는 그네가 지나가는 반원을 눈으로 재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괜찮겠지. 지금쯤이면 닿지 않겠지. 그러나 어린 눈의 계산은 늘 삶보다 조금 늦다. 그 늦음이 사고가 되는 줄 모른 채, 아이는 한 발 더 다가선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한 상급생이 그네를 뒤로 크게 젖혔다. 쇠사슬이 팽팽하게 당겨졌고, 햇빛이 쇠줄에 걸려 한순간 유리처럼 번쩍였다. 아이는 발을 힘껏 내밀며 몸을 앞으로 던졌다. 그네는 내가 짐작한 것보다 훨씬 빠르고, 훨씬 낮고, 훨씬 넓게 날아왔다. 나는 비켜날 틈을 놓쳤다.

기억은 종종 소리보다 먼저 빛을 저장한다.
그날도 그랬다. 나사못 끝에서 스친 차가운 번쩍임. 그 뒤에야 바람이 얼굴을 찢는 듯한 기척이 왔고, 이어 쇠사슬의 울음이 귀를 때렸다. 그다음 순간, 왼쪽 뺨이 뜯겨 나가는 듯한 감각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아주 짧았다. 짧은 것이 더 깊이 각인되는 법이다. 아픔은 충격보다 한 박자 늦게 왔다. 먼저는 얼얼했고, 곧이어 뜨거웠고, 그다음엔 축축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뺨에 댔다.
미끈했다.
손을 떼어 보았다.
붉었다.
피였다.

내 어린 눈에 피는 몸속에 갇혀 있어야 하는 붉은 비밀이었다. 그것이 갑자기 햇빛 아래로 흘러나와 손바닥을 적실 때, 통증보다 먼저 공포가 자란다. 나는 그제야 비명을 질렀다. 목구멍이 뒤집히듯 소리가 터져 나왔고, 눈물은 앞을 덮쳤다. 피와 눈물이 한데 흐르니 얼굴 한쪽이 젖은 불덩이 같았다.
세상은 갑자기 왼쪽 뺨이라는 아주 작은 지점으로 쪼그라들었다.
운동장이 잠깐 멈추었다.

“피 난다!”

누군가 외쳤다.
구경하던 아이들이 반걸음씩 물러났다. 그네를 타던 상급생 하나가 땅으로 뛰어내려 잠깐 내 얼굴을 보더니, 자기 잘못이 들킬까 겁난 사람처럼 얼굴이 하얘졌다.
그러나 누구도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아이들은 사고 앞에서 늘 둘로 갈린다. 더 가까이 몰려와 눈을 크게 뜨는 아이와, 불행이 옮겨 붙을까 두려워한 발 물러서는 아이. 그날 대부분은 뒤로 물러섰다.

나는 얼굴을 감싼 채 울었다.
울음은 아프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무서워서였다. 얼굴이 망가진 것 같았고, 피가 멈추지 않을 것 같았고, 이대로 내가 다른 아이가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몸은 내 것이었지만, 그 순간의 얼굴은 낯선 사물처럼 느껴졌다. 발끝이 떨리고 무릎이 풀렸다. 서 있으려 해도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 누나가 왔다.
지금도 나는 누나가 오는 모습을 소리로 기억하지 않는다. 다만 군중 한가운데서 길이 갈라지는 느낌으로 기억한다. 누나는 숨이 차서 어깨가 오르내리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이상하리만치 선명했다. 친구들 틈을 헤치고 내 앞에 멈춰 서더니, 다짜고짜 내 손을 떼어 냈다. 누나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었다.
두 살 위의 아이가 두 세대 위 사람처럼 보이는 순간이 있다. 놀랐으나 놀란 티를 낼 수 없는 사람의 얼굴. 울고 싶은데 먼저 울면 안 된다고 이를 다무는 얼굴. 누나는 한 번 상처를 보고 짧게 말했다.

“가만있어.”

그 말에는 명령보다 기도가 더 많이 들어 있었다.
누나는 내 팔을 잡고 운동장 모퉁이로 데려갔다. 모래가 쌓인 구석, 공도 잘 굴러오지 않고 아이들도 잘 가지 않는 자리였다.
나는 울며 따라갔다. 발은 자꾸 꼬였고, 누나는 거의 나를 끌다시피 했다. 그 자리에서 누나는 나를 옆으로 눕혔다. 햇빛이 눈에 바로 들어왔다. 누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그대로 모래를 한 움큼 쥐었다.

그 순간의 공포는 피를 처음 보았을 때와는 또 달랐다.
누나 손에 담긴 모래는 햇볕에 데워져 있었다. 금빛 알갱이들 사이에 아주 작은 돌가루가 섞여 있었다. 누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피는 무엇으로든 막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지혜를, 아직 어른도 아닌 몸으로 먼저 실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래를 내 상처 위에 뿌렸다.

나는 그때 인간의 얼굴이 하나의 우물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모래는 그 우물 안으로 쏟아졌다. 쓰라림이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었다. 타는 소금이 상처 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고, 가는 유리 조각들이 살 사이로 파고드는 것 같았다. 나는 몸을 비틀었다. 다리가 허공을 찼다. 손으로 얼굴을 감싸려 했으나 누나가 내 어깨를 눌렀다.

“조금만 참아. 조금만.”

누나 목소리도 이미 울먹이고 있었으나, 손은 떼지 않았다.
모래가 피와 만나자 금세 무거워졌다. 상처 위에 젖은 둑이 쌓이는 느낌이었다. 알갱이들이 살 속에 박히는 듯해 소름이 끼쳤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울다가, 울 힘이 다해 끅끅거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말 이상하게도, 조금 지나자 피의 흐름이 더뎌졌다. 뜨겁게 번지던 감각이 느릿하게 굳어 갔다. 누나는 손등으로 내 눈물을 닦아 주며 상처를 들여다보았다. 피와 모래가 엉겨 하나의 딱딱한 껍질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어린 누나의 손끝에는 어설픔과 용기가 동시에 묻어 있었다.

그 순간 운동장에서는 다시 아이들이 뛰기 시작했다.
멀리서 쇠사슬 끼익거리는 소리가 또 들렸다. 방금 전까지 내게는 세상이 무너진 사건이었는데, 학교는 아무렇지 않게 원래의 점심시간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무심한 활기가 어린 내겐 참을 수 없이 서러웠다. 나만 너무 아픈 것 같았다. 나만 세상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았다. 세상은 이렇게 쉽게 제자리로 돌아가는데, 나는 아직 그 자리에서 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외로웠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올 때보다 두 배는 길었다.
누나는 몇 걸음마다 내 얼굴을 살폈다.

“아직 피 나?”
“많이 아파?”

묻고 또 물었다. 나는 입을 크게 벌리면 상처가 땅겨 입꼬리까지 찢어질 것 같아 고개만 끄덕이거나 저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뺨이 얼얼했다. 산비탈을 넘을 때 메뚜기가 튀었고, 마른 풀잎이 종아리를 스쳤다. 아픈 날의 풍경은 이상하리만치 정밀해진다. 돌부리 하나, 나무 그림자 하나, 누나의 그림자가 내 그림자보다 조금 더 길다는 사실까지 또렷하게 눈에 박혔다.

집에 도착했을 때도 어른들은 바빴다.
마당에는 나뭇단이 쌓여 있었고, 어머니는 손등에 흙을 묻힌 채 물동이를 옮기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폈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잠깐 보더니
“어쩌다 저랬어” 하고 말했다.
놀람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그 놀람은 곧 일의 순서 속으로 밀려났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농사철의 집은 아픈 아이 하나를 오래 붙잡고 슬퍼할 틈이 없었다. 먹고사는 일이 먼저였고, 상처는 그 뒤였다. 그 무심함이 어린 내겐 서운했으나, 지금 생각하면 그것 역시 생활의 진실이었다. 가난은 슬픔조차 길게 허락하지 않는다.

저녁에 나는 얼굴 한쪽을 조심하며 밥을 먹었다.
씹을 때마다 상처가 땅겼다. 밥알 하나가 뺨 안쪽에서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온 신경이 그쪽으로 몰렸다.
누나는 맞은편에 앉아 내 얼굴을 몰래 훔쳐보았다. 어른들은 말없이 밥을 먹었다. 숟가락이 그릇에 부딪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밤이 되자 상처는 더 뜨거워졌다. 만져 보니 피와 모래가 굳어 딱딱한 껍질이 되어 있었다. 얇지만, 지금 떼어 내면 모든 것이 다시 흐를 것만 같은 작은 갑옷. 나는 그 갑옷에 의지해 잠들었다.


문제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다.
세수하려고 찬물을 손바닥에 받았다. 상처 쪽은 조심한다고 했지만 물은 생각보다 빨랐고, 손은 생각보다 둔했다. 물이 닿는 순간 굳어 있던 것이 미세하게 흔들리더니 툭 하고 떨어졌다.
나는 그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아니, 소리라기보다 몸속 어딘가에서 무언가 끊기는 감각이었다. 이어 상처에서 다시 피가 배어 나왔다. 양은 전날보다 적었으나, 한 번 멎은 줄 알았던 피가 다시 나오자 더 무서웠다. 밤새 나를 지켜 준 줄 알았던 딱지가 너무 쉽게 무너졌기 때문이다. 어린 내게 그것은 거의 배신이었다.

그때 집에 있던 약은 빨간 약뿐이었다.
병마개를 여니 독한 냄새가 올라왔다. 약인지 페인트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냄새였으나, 한번 맡으면 오래도록 코끝에 남는 냄새였다.
어머니는 솜에 그 약을 묻혀 상처에 찍어 발랐다. 이번 통증은 모래와 달랐다. 모래가 불붙은 소금이었다면, 빨간 약은 차가운 벌이었다. 싸하게, 깊숙이, 오래갔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어머니는

“남자는 이 정도는 참아야지”

하고 말했다. 위로인지 훈계인지 모를 말이었지만, 나는 그 말 덕분에 울음을 삼켰다.
그 뒤로 상처는 며칠 동안 내 얼굴의 주인이 되었다.

딱지가 생겼다가 웃다가 벌어지고, 세수하다가 벗겨지고, 자다가 베개에 스쳐 조금씩 터졌다. 상처는 얼굴이라는 민감한 자리를 차지한 채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나는 거울이 있을 때마다 몰래 들여다보았다. 왼쪽 뺨의 자국은 날마다 달랐다. 어떤 날은 깊어 보였고, 어떤 날은 거의 아문 듯했다. 아이들은 물었다.

“어디서 다쳤어?”

어떤 아이는 신기해했고, 어떤 아이는 징그럽다는 표정으로 힐끗 보고 지나갔다. 나는 부끄러웠다. 얼굴에 남은 자국이 내 잘못을 증명하는 것 같았다. 그네 가까이 가면 안 된다는 걸 몰랐느냐고, 세상이 자꾸 나를 꾸짖는 것만 같았다.

시간은 상처보다 질겼다.
어느 날부터 피는 나지 않았다. 딱지도 완전히 떨어졌다. 대신 작은 홈이 남았다. 흉터라 부르기엔 얕고, 아무 일 없었다 하기엔 분명한 자리였다. 거울을 보면 왼쪽 뺨이 살짝 꺼져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그곳을 문질렀다. 매끈하지 않았다.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이 서러웠다. 사고는 끝났는데 흔적은 남아 있었다. 아이는 흔적에 약하다. 지워지지 않는 것 앞에서 쉽게 슬퍼진다.

어느 날 누군가 말했다.

“너 보조개 있네?”

나는 그 말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보조개라고?
이게?

그 자리는 그네 옆 나사못이 파고든 자리였고, 모래가 상처 속으로 들어가던 자리였고, 빨간 약의 냄새가 오래 눌어붙어 있던 자리였다. 내게는 통증의 지도였지, 귀여움의 표식이 아니었다.
남의 눈에는 그것이 보조개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날 나는 집에 와 거울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가만히 있어도 살짝 패인 자국. 웃으면 조금 더 도드라지는 자리. 정말, 아주 조금은, 보조개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 순간 묘한 생각이 들었다. 흉터와 보조개는 한 끗 차이일 수도 있겠구나. 보는 눈이 다르면 같은 자리도 전혀 다른 이름을 얻는구나. 상처는 상처인 채로 남지만, 세상은 때로 그것을 다른 표정으로 읽어 주는구나.

그 순간부터 오래 아팠던 기억의 결이 달라졌다.
그네를 타지 못해 서럽던 마음, 상급생들 틈에서 작아지던 몸, 번쩍이던 나사못, 뜨겁게 흐르던 피, 운동장 모퉁이 모래밭의 눈부신 햇빛, 누나의 떨리는 손,
집에 와서도 오래 울 수 없던 농가의 저녁,
빨간 약 냄새,
딱지가 떨어질 때마다 되살아나던 두려움.
그 모든 것이 이제는 단지 불행의 기록이 아니라 한 점 작은 홈으로 응축되어 있었다. 그리고 세상은 그것을 흉터라 부르지 않고 보조개라 불러 주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전화위복轉禍爲福은 불행이 곧장 복으로 바뀐다는 뜻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날의 통증이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다. 피를 모래로 막아야 했던 형편이 낭만적이었던 것도 아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본래의 이름만으로 남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어떤 상처는 흉이 되면서도 끝내 사람의 얼굴을 망치지 않고, 어떤 아픔은 오래 돌고 돌아 한 사람의 표정 속으로 스며든다.

지금도 가끔 왼쪽 뺨을 만진다.
순간, 오래전 운동장의 흙냄새가 손끝으로 돌아온다. 쇠사슬이 끼익거리던 소리, 피를 본 순간의 새하얀 공포,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모래를 움켜쥐던 누나의 손. 누나는 그때 의사도 약사도 아니었다. 고작 두 살 더 많은 아이였을 뿐이다. 그러나 그 절박한 순간 내게 누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어른이었다. 어쩌면 내 뺨에 남은 작은 홈은 나사못이 낸 상처만이 아니라, 누나가 보여 준 사랑의 방식까지 함께 새겨 둔 자리인지도 모른다.

그네는 그날도 타지 못했다.
나는 다른 것을 얻었다.
아픔은 오래 남는다는 것.
오래 남는다고 해서 반드시 추한 것은 아니라는 것.

세상은 때로 상처를 전혀 다른 이름으로 불러 준다는 것.
나는 이제, 운동장 모퉁이 모래밭에 누워 얼굴에 모래를 뒤집어쓰고 울던 그 아이를 떠올릴 때마다, 그 아이가 아주 가엾기만 하지는 않다. 그 아이는 피를 흘리며 세상 하나를 먼저 배웠다. 불행은 그 자리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 상처는 시간이 지나 다른 표정이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삶에는 흉터와 보조개 사이를 가르는 아주 미세한 기적이 있다는 것을.

그 기적은 대개 크지 않다.
아주 작고, 아주 늦게 온다.
그러나

한 사람의 얼굴에는 오래 남는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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