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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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속에 놓인 작은 온기
봄비가 오래 묵은 기억을 깨우듯 내리던 날이었다. 아파트 뒤편의 낮은 산자락은 물기를 머금은 흙냄새로 조용히 숨 쉬고 있었고, 가지 끝마다 매화와 산수유가 막 피어나려는 기척으로 젖어 있었다.
아직 꽃은 온전히 열리지 못한 채, 연노란 기운과 희디흰 숨결만 맺혀 비에 떨고 있었다.
그 길목에서 한 할머니를 보았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는 듯, 그러나 숨기지도 않으려는 태도로 천천히 걷고 있었다.
할머니 손에는 오래된 우산 하나가 들려 있었다. 손잡이는 닳아 윤기가 사라졌고, 천은 몇 번이나 꿰맨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우산이 아니라, 오래 함께 살아온 시간의 물건처럼 보였다.
가까이에서 보니 할머니는 그 우산을 쓰지 않았다. 대신 아파트 뒤편에 마련된 작은 길고양이 집 위에 조심스레 씌웠다. 바람이 들지 않도록 돌을 눌러 얹고, 가장자리를 다시 한 번 만져 보는 손길은 꼭 아이의 이불을 여며 주는 어머니의 손 같았다.
그 우산은 먼저 세상을 떠난 할아버지가 쓰던 것이라고 했다. 버리지 못한 이유는 단순한 습관 때문이 아니었을 것이다. 함께 걸었던 날들의 그림자와 비 맞으며 돌아오던 저녁들이 그 안에 스며 있었을 것이다. 그 우산이 이제 길고양이의 지붕이 된 것은, 어쩌면 남은 사랑이 머무를 자리를 찾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를 지켜보던 동네 아저씨 한 사람이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연한 짓이라고, 세상일도 바쁜데 왜 저런 수고를 하느냐"라고 했다.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는 이웃과 거리를 두고 사는 현대인의 무표정한 생활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작은 사발을 꺼내 사료를 담았다. 비에 젖지 않도록 바위 옆에 놓고, 조금 물러나 앉았다.
그때 숲 가장자리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젖은 털이 몸에 달라붙어 더 작아 보였고, 눈은 빗물 속에서도 번뜩였다. 가까이 오지 못한 채 한참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경계심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눈빛 속에는 굶주림보다 더 오래된 고독이 있었다.
할머니는 그저 기다렸다.
부르지도 않았고, 손짓도 하지 않았다. 다만 비를 맞으며 오래 앉아 있었다. 그 침묵 속에서 이상하게도 말보다 깊은 무엇이 오갔다. 사람과 짐승 사이가 아니라, 살아 있는 것과 살아 있는 것 사이에서만 흐르는 어떤 이해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오래 서 있었다. 세상은 점점 빠르게 돌아가고, 사람들은 효율과 계산 속에서 서로를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여전히 쓸모없는 일처럼 보이는 일을 한다. 돌아올 보상도 없이, 알아주는 이도 없이,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한다. 그리고 그런 일이야말로 세상을 조금 덜 차갑게 만든다.
빗속에서 우산은 더 이상 비를 막는 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생이 남긴 온기를 다음 생에게 건네는 다리였다. 할머니의 손길은 말이 없었지만 오래 남았다.
그날 이후 비가 오면 나는 종종 그 자리를 떠올린다.
세상을 지탱하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건네는 작은 밥 한 사발일지도 모른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