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자리의 스승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낮은 자리의 스승




청람 김왕식





진정한 스승은 크게 말하지 않는다. 말보다 먼저 태도가 앞서고, 태도보다 먼저 숨결이 전해진다. 교단 위에 서 있으되 높아 보이지 않고, 가까이 서 있으되 부담을 주지 않는 사람. 오래 남는 교사는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깊이 대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20여 년 전 민족사학 서울오산학교에 근무하던 시절 또렷이 깨닫게 해 준 한 교사가 있었다. 그는 늘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온화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먼저 인사했고, 교무실에서는 늘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그 말투에는 서두름이 없었고, 표정에는 긴장이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면 더 분명해졌다. 따뜻한 가슴과 부드러운 눈빛, 그리고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덕의 기운이 있었다. 그는 누군가를 가르치기 전에 이미 사람을 대하고 있었다. 그것이 그의 수업의 시작이었다.

교단에 서면 그 모습은 더욱 선명해졌다. 그는 학생들 앞에서 권위를 세우려 하지 않았다. 교탁을 두드리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약간 숙인 채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수업을 열었다. 그 순간 교실은 조용히 집중되었다. 강요가 아니라 신뢰로 만들어지는 침묵이었다. 아이들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대신 귀를 기울였다. 그가 말할 때는 설명을 듣는다는 느낌보다 함께 생각한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겸손이었다.

그는 불치하문不恥下問의 정신을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천하고 있었다. 수업 중에도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학생이 질문을 던지면 잠시 생각한 뒤 이렇게 말했다.

“이 부분은 내가 자세히 알지 못하니 교무실에 계신 훌륭한 선생님들께 여쭤보고 와서 알려주겠다.”

그 말은 변명이 아니었다. 수업이 끝난 뒤 실제로 찾아가 묻고, 다음 시간에 더 정확하고 깊이 있는 설명을 들려주었다. 그 과정은 학생들에게 지식보다 더 큰 것을 가르쳤다. 모른다고 말하는 용기, 그리고 배우려는 태도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태도는 교실의 공기를 바꾸었다. 학생들은 질문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틀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교실은 정답을 겨루는 공간이 아니라 배움을 나누는 공간이 되었다. 말솜씨보다 성실한 태도가 더 큰 힘을 가졌고, 성적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배움은 경쟁이 아니라 동행이 되었고,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 이전에 함께 배우는 사람이 되었다.

요즘 세상은 자기 확신이 넘친다.

누구나 자신이 옳다고 말하고 더 크게 주장하려 한다. 타인을 앞세우기보다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분위기가 낯설지 않다. 그런 흐름 속에서 그 교사의 태도는 더욱 또렷하게 빛난다.
스스로를 낮추고 다른 이의 지혜를 인정하는 일은 겉으로는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그것은 오래 쌓인 인품과 오랜 시간의 성찰이 아니면 가능하지 않다.

돌이켜 보면

진정한 스승은 많은 것을 아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모름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 모름을 통해 더 넓은 배움의 길을 여는 사람이다. 학생은 그런 스승을 통해 지식보다 더 큰 것을 배운다. 겸손과 신뢰, 그리고 배움의 기쁨을 배운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의 모습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지속되는 빛처럼 마음속에 남는다. 교단 위에서 가장 높이 서지 않고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학생을 바라보던 사람, 자신보다 더 훌륭한 이가 많음을 자연스럽게 말하던 사람. 그는 스스로를 낮추어 학생을 높였고, 그로써 교사의 자리를 더욱 높였다.

아마도 진정한 스승이란 그런 사람일 것이다. 지식으로 앞서지 않고 삶으로 먼저 가르치는 사람, 말로 이기려 하지 않고 마음으로 이끄는 사람. 그리고 언제나 조용한 미소로 가르치는 사람이다.

그를 떠올릴 때마다 다시 생각하게 된다. 스승은 교단 위에 서 있는 사람이 아니라, 언제나 낮은 자리에서 배움의 길을 밝혀 주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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