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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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앞에 앉다
청람 김왕식
문장 앞에 앉는 일은
의자 하나 끌어당기는 일과 다르다
보이지 않는 나를
내 앞에 불러 세우는 일이다
오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함부로 지나친 얼굴은 없었는가
쉽게 잊어버린 슬픔은 없었는가
내가 편하자고
남의 침묵을 모른 척한 적은 없었는가
문장은
묻지 않는 듯 묻는다
시를 쓰려는 사람은
먼저
자기 안의 서두름부터
조용히 내려놓아야 한다
한 줄은
기교보다 늦게 오고
진실보다 먼저 오지 않는다
시 앞에서는
허세가 오래 버티지 못한다
문장 앞에 앉는다는 것은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짓 없이 있기 위해
잠시 세상을 멈추는 일이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