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컵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빈 컵



청람 김왕식





컵이 비어 있다


무언가를
다 담아냈다는 뜻이기도 하고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입을 대기 전의 고요
마신 뒤의 온기
그 사이를 지나온
작은 시간들이


컵의 안쪽에 남아 있다


사람들은
가득 찬 것만을
귀하게 여기지만


빈 컵은 안다
비어 있어야
다시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오늘 하루도
다 비워 내지 못한 채
쥐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조용히
컵 하나를 내려놓는다


그 비어 있음이
다음 한 모금을
준비하고 있다



ㅡ청람


작가의 이전글문장 앞에 앉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