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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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앞에 선 인간, 신앙의 깊이를 묻다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인간은 자신의 한계 앞에 설 때 비로소 자신을 또렷이 바라보게 된다. 평온할 때에는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연약함과 불완전함이, 삶의 균열 앞에서 드러난다. 그 순간 많은 이들이 종교를 찾는다. 전지전능한 존재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보이지 않는 손에 자신의 삶을 의탁하려 한다. 기도는 그렇게 시작된다. 간절함은 깊어지고, 도움을 바라는 마음은 더욱 절박해진다.
그 기도의 방향이 오로지 문제의 해결과 현실적 이익에 머무를 때, 종교는 쉽게 수단으로 전락한다. 신앙이 삶을 비추는 빛이 아니라,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른바 기복적 태도는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에서 비롯되지만, 거기에 머무를 때 신앙은 더 이상 내면을 깊게 하지 못한다. 외려 인간을 더욱 의존적으로 만들고, 삶의 본질을 흐리게 할 위험을 안는다.
종교는 본래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길이 아니라, 그 한계를 깊이 이해하도록 이끄는 통로여야 한다. 고통 속에서 신을 찾는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만남이 단순한 요청과 응답의 관계에 그친다면, 신앙은 삶의 표면을 맴돌 뿐이다. 참된 신앙은 문제 해결 이후에도 계속된다. 문제를 통해 시작된 질문을 끝까지 붙들고, 자신을 성찰하는 데서 깊어진다.
기도는 무엇을 얻기 위한 말이기 이전에, 자신을 내려놓는 행위다. 신 앞에 선다는 것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한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 겸허함 속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신을 새롭게 바라본다. 삶의 조건이 바뀌지 않아도,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교는 인간을 위로하기 위해 존재하지만, 그 위로는 현실을 회피하게 하는 달콤함이 아니라, 현실을 견디게 하는 깊은 힘이어야 한다. 신을 찾는 순간이 위기의 때에만 머무르지 않고, 일상의 고요한 시간 속에서도 이어질 때, 비로소 신앙은 삶의 중심이 된다.
중요한 것은 신을 찾는 이유가 아니라, 그 만남 이후의 변화다. 종교는 인간을 대신해 삶을 해결해 주는 장치가 아니다. 외려 인간이 스스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더 겸허하게 살아가도록 이끄는 거울이다. 그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오래 바라볼 수 있을 때, 신앙은 비로소 인간의 삶을 온전히 비추는 빛이 된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