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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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덕임의 힘, 말보다 깊은 위로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이 가장 약해지는 순간은 말이 필요할 때가 아니라, 말이 닿지 않는 순간이다. 고통은 설명되지 않는다. 설명되는 순간 이미 그것은 고통의 바깥으로 밀려난다.
하여, 힘든 사람 앞에서 아무리 고운 말을 골라 건네도, 그 말이 닿지 못하는 자리가 생긴다. 말은 분명 따뜻한데, 마음은 여전히 차갑게 남아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흔히 위로를 잘하려고 애쓴다. 적절한 문장을 찾고, 상대의 마음을 달래 줄 표현을 고르고, 상처를 덮어 줄 말을 고민한다. 그 애씀 속에는 때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숨어 있다. 그 조급함은 상대의 고통보다 내 역할을 먼저 생각하게 만든다. 위로가 아닌 설명이 되고, 공감이 아닌 해석이 된다. 그 순간, 말은 상대의 마음에 닿기보다 그 앞에서 멈춘다.
정작 사람을 살리는 것은 말이 아니라 태도다.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일, 그것이 가장 깊은 위로가 되는 이유다. 끄덕임은 언어 이전의 언어다. 상대의 말을 판단하지 않겠다는 신호이며, 끝까지 함께 있겠다는 약속이다. 그 작은 움직임 하나에 담긴 수용의 힘은 어떤 문장보다 깊다.
경청은 단순히 듣는 행위가 아니다. 상대의 시간을 함께 견디는 일이다. 말하는 사람의 호흡에 맞춰 자신의 속도를 낮추고, 그 사람이 건너고 있는 마음의 강을 조용히 바라보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듣는 이는 중심을 내려놓아야 한다. 충고하고 싶은 마음,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 자신의 경험을 덧붙이고 싶은 마음을 잠시 거두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상대의 말이 온전히 들어온다.
최고의 웅변은 화려한 언변에서 나오지 않는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는 침묵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는 존재 앞에서 비로소 마음을 연다. 말이 아니라 태도에서 신뢰를 느끼기 때문이다. 끄덕임은 그 신뢰를 만들어 내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깊은 방식이다.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은 해결책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이 고통 속에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누군가가 옆에 앉아 자신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있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다. 그때의 위로는 말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함께 있어 주는 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종종 말을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한다. 그러나 사람을 살리는 것은 말의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다. 말을 줄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끝까지 함께 들어주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깊은 의미에서의 웅변가다.
위로는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머무는 것이다. 상대의 고통을 대신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그 고통의 시간에 함께 있어 줄 수는 있다. 그 조용한 동행이야말로 말보다 오래 남고, 말보다 깊이 스며든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