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낮아질수록 깊어지는 사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사람의 깊이는 말의 크기로 드러나지 않는다.
말의 높이를 낮추는 순간, 그 깊이는 더욱 또렷해진다. 세상에는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데 익숙한 이들이 있다. 자신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이루었는지, 얼마나 넓은 세계를 경험했는지를 말로 증명하려 한다. 그 말은 때로 정확하고, 때로는 설득력 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안에는 알 수 없는 가벼움이 스며 있다. 넘치도록 쏟아낸 말은 오히려 무게를 잃는다.
진정 아름다운 사람은 다르다.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그것을 드러내려 애쓰지 않는다. 이미 충분히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채워진 사람은 넘치지 않는다. 스스로를 낮추며, 자신의 자리를 조용히 지킨다. 그 겸허한 태도는 꾸미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기품이 있다.
어떤 이는 자신이 특정 분야의 책을 모두 읽었다고 말한다. 그 말은 자신감의 표현일 수 있으나, 동시에 스스로를 닫아버리는 선언이기도 하다. 다 읽었다는 말은 더 이상 읽을 것이 없다는 뜻이 되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태도로 이어지기 쉽다. 지식이 많을수록 세계는 더 넓어지는데, 그 말은 외려 세계를 좁히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또 다른 사람이 있다. 수많은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야에 관심이 있어 몇 권 읽었을 뿐인데 아직 많이 부족하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그 말에는 비어 있음이 아니라, 끝없이 열려 있는 태도가 담겨 있다. 알수록 모르는 것이 많아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사람의 고백이다. 그 겸손은 억지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배움의 깊이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이다.
이러한 사람 앞에서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가 자신을 낮추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태도가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기 때문이다. 말로 높아진 사람이 아니라, 삶으로 낮아진 사람이 주는 울림이 있다. 그 울림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다.
겸허함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을 정확히 아는 데서 비롯된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분명히 인식하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낮아질 수 있다. 겉으로 낮아 보이려 애쓰는 태도는 오래가지 못하지만, 내면에서 비롯된 겸허함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어진다.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능력 자체가 아니다. 그 능력을 어떻게 다루는 가에 달려 있다. 능력이 많을수록 더 낮아지는 사람, 많이 알수록 더 배우려 하는 사람, 그 사람의 존재는 주변을 밝히는 빛과 같다. 드러내지 않아도 빛나고,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깊이가 있다.
지식은 쌓을수록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쌓일수록 낮아지는 것이다. 그 낮아짐 속에서 사람은 비로소 다른 사람과 같은 눈높이에 서게 된다.
그 자리에서 비로소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진다. 겸허한 사람의 아름다움은 바로 그 만남의 자리에서 가장 선명하게 빛난다.
ㅡ청람 김왕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