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엄마 ㅡ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그 이름, 엄마



청람 김왕식






가난했다.
그 말 한마디로는 다 담기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그 시절을 돌아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결국 그것이었다.

소학교 겨우 마친
어린 나이에 보따리 하나 들고 집을 나섰다.
아직 세상도, 사람도 다 알지 못하던 나이에 낯선 땅으로 향했다.

서울역에 닿았을 때, 그곳은 환영의 장소가 아니라 시험의 시작이었다.
그날부터 삶은 살아내야 하는 일이 되었다.
청계천 피복 공장에서 미싱 보조로 일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는 하루 종일 귀를 때렸고, 먼지는 목과 폐 깊숙이 내려앉았다.

눈은 늘 따갑고 손끝은 쉴 틈이 없었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벌어야 했고, 버텨야 했고,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번 돈은 거의 고스란히 집으로 갔다.
남동생의 학비가 되었고, 그의 교복이 되었고,
그의 미래가 되었다.

자신의 꿈을 꺼내 볼 시간은 없었지만, 동생의 꿈은 지켜 주고 싶었다.
그 동생은 공부 야무지게 해
분필 잡는 선생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성공이라 불렀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자신이 그 성공의 뒤편에 서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저 “동생 복이 좋았다”고 웃으며 넘겼다.

그 말속에는
수많은 밤과,
참아낸 눈물과,
내려놓은 꿈들이 들어 있었지만
그는 그것을 꺼내지 않았다.

시골에 계신 부모 대신
그는 이미 한 집안의 기둥이 되어 있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학으로 향했다.
몸은 이미 지쳐 있었고
눈은 반쯤 감긴 채였지만
그래도 글을 놓지 않았다.

몇 줄을 읽고,
몇 줄을 적으며
하루를 또 건넜다.

그렇게 이어진 시간이
그를 야간대학으로 이끌었고
번듯한 회사에 당당히 들어가게 했다.

누군가는 그것을 “뒤늦은 성공”이라 말했지만
사실은 늦은 것이 아니라
너무 오래 참고 걸어온 길이었다.

그의 삶은
늘 한 발 뒤에서
누군가를 밀어주는 자리였다.
자신을 앞세운 적은 거의 없었다.
세월이 흐르고
딸이 자랐다.

그 딸은
어머니가 걸어온 길을
모두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느끼고는 있었을 것이다.

말로 다 하지 않아도
몸으로 살아낸 사랑은
끝내 전해지기 때문이다.

추석날,
딸이 전화를 건다.

“엄마,
내 엄마라서 참 좋아.
다시 태어나도
내 엄마 해줘.”

그 짧은 말속에는
수십 년의 시간이 담겨 있었다.
수화기를 든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저
눈가를 훔친다.

그 눈물은
서러운 눈물이 아니다.

지나온 세월이
한순간에 가슴으로 올라와
말이 되지 못하고
눈물로 흘러내리는 것이다.

누군가의 인생은
기록으로 남지 않는다.
신문에도 나오지 않고
책으로 묶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 사람을 살리고
한 가정을 지키고
다음 세대를 일으켜 세운 삶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그 이름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오래 남는다.

엄마.
그 한마디로
모든 시간이 설명된다.

가난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았던 사람,
자신의 꿈을 뒤로 미루고도 웃을 수 있었던 사람,
말없이 견디고,
말없이 사랑했던 사람.

그 이름은
부르기만 해도
가슴이 젖는다.

오늘도
어디선가
또 한 사람의 엄마가
아무도 모르게
한 생을
조용히 살아내고 있다.




그 딸의
그 엄마

지금
하늘로 돌아갔다.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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