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말의 공허
말은 참 가볍다.
입술을 떠나는 순간, 그것은 이미 나의 것이 아니다. 공기 속으로 흩어져 버리고, 어디에 닿는지도 모른 채 떠돈다. 때로는 아무 의미 없이 사라지고, 때로는 엉뚱한 곳에 닿아 또 다른 오해를 낳는다. 그래서일까. 말은 종종 구름처럼 느껴진다. 형태는 있지만 붙잡을 수 없고, 분명 존재하지만 손에 잡히지 않는다.
살아오며 수없이 많은 말을 하고 또 들었다.
그 가운데 얼마나 많은 말이 마음에 남아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손에 꼽을 정도다. 대부분의 말은 흘러가 버린다. 부운처럼,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그 순간에는 진지했고, 필요했던 말이었을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말은 부평초와도 닮아 있다.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물 위를 떠돌며 이리저리 밀려다닌다.
그렇다고 해서 말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사람은 말로 살아가고, 말로 관계를 맺는다. 문제는 말의 양이 아니라, 그 깊이에 있다. 가벼운 말은 쉽게 나오지만, 깊은 말은 오래 머문다. 생각이 깊지 않으면 말도 깊어질 수 없다. 마음이 가라앉지 않으면, 말 또한 떠오른 채로 머물 뿐이다.
문득 연꽃을 떠올린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뿌리를 내린다. 가장 낮고 어두운 자리에서 시작하여, 물을 뚫고 올라와 결국 맑은 꽃을 피운다. 그 꽃은 물 위에 있지만, 결코 떠 있는 것이 아니다. 깊은 곳에서 이어진 뿌리가 그 존재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허공을 떠도는 소리가 아니라, 깊은 마음에서 길어 올라온 한 송이 꽃처럼 피어났으면 좋겠다. 말이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충분히 내려가 보았으면 한다. 생각의 바닥까지, 감정의 뿌리까지. 그곳에서 이끌어 올린 말이라면, 비록 많지 않아도 오래 남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 말은 언제나 크거나 화려하지 않았다. 외려 짧고 조용한 말들이 오래 머물렀다. 그것은 단순히 문장이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이 함께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말이 아니라, 삶이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여, 이제는 말을 아끼고 싶어진다. 말을 줄이겠다는 뜻이 아니라, 말을 깊게 하고 싶다는 뜻이다. 떠다니는 말이 아니라, 뿌리를 가진 말을 하고 싶다. 듣는 이의 마음에 잠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남아 조용히 피어나는 그런 말.
말은 여전히 허공을 떠돈다.
그 가운데서도 어떤 말은 가라앉아 뿌리를 내린다.
시간이 흐른 뒤, 한 송이 꽃으로 다시 떠오른다.
그 꽃이,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피어나기를 바란다.
□
지금
내 말부터
신중해야겠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