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왜 ‘인’인가 — 청람 김왕식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시인 詩人은 왜 ‘인人’인가
— 직업과 존재 사이의 유쾌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수필가隨筆家는 ‘가’이고, 소설가小說家도 ‘가’인데, 왜 시인만은 ‘인人’일까.

처음에는 그저 언어의 습관쯤으로 여겼다. 작가(作家), 소설가, 평론가 評論家
—모두 ‘가家’로 끝난다.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 직업으로서의 이름이 붙은 사람들이다. 그런데 시인은 다르다. 시인은 시인가라고 하지 않는다. 그냥 시인이다. 사람 ‘인(人)’이 붙는다.

이 이상한 차이를 생각하다 보니, 괜히 웃음이 났다. 혹시 시인은 직업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라는 뜻인가. 그렇다면 수필가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소설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인데, 시인은 그냥 사람이라는 말인가.

이쯤 되면 시인이 가장 대단한 존재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해야 이름이 붙는데, 시인은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름이 완성되는 셈이니까. 아무것도 쓰지 않아도 이미 시인이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이미 ‘인’이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이건 대단함이라기보다 오히려 곤란한 일일지도 모른다. 수필가는 글을 잘 쓰면 되고, 소설가는 이야기를 잘 만들면 된다. 잘 못 쓰면 “글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시인은 다르다. 시인이 부족하다는 말은 곧 사람이 부족하다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이 얼마나 무서운 호칭인가.

그래서일까.
시인들은 유난히 삶을 조심스럽게 산다. 아니, 적어도 그런 척을 한다.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고, 길을 걸을 때도 괜히 하늘을 한 번 더 올려다본다. 그것이 시인의 의무라도 되는 것처럼. 사실은 그냥 길을 잘못 들어서 위를 본 것일 수도 있는데, 보는 사람은 ‘아, 역시 시인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끔 그 장면이 우습다. 시인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시인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그냥 사람인데, ‘인’이라는 이름 하나로 괜히 깊어 보이고, 괜히 슬퍼 보이고, 괜히 철학적인 존재가 된다.

그렇다면 ‘가家’와 ‘인人’의 차이는 무엇일까.
‘가’는 역할이다.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들고, 평을 하는 기능이다. 그래서 ‘가’는 언제든 내려놓을 수 있다. 오늘은 글을 안 쓰면, 잠시 수필가가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인’은 다르다. 사람이라는 것은 내려놓을 수 없다. 시인은 시를 쓰지 않아도 시인이다. 숨 쉬고, 걷고, 바라보는 그 자체가 이미 시인의 영역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라는 말은 직업이 아니라 태도에 가깝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사소한 것에 의미를 붙이는 습관, 지나가는 바람에도 이름을 붙이고 싶은 마음. 그런 것들이 모여 ‘인’이라는 글자를 만들어 낸다.

문제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그 ‘인’이 버겁다는 데 있다. 나는 시인이 되고 싶어서 시를 썼지만, 막상 시인이 되고 보니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부담이 더 커졌다. 글을 못 쓰는 것보다, 사람답지 못하게 보일까 봐 더 신경이 쓰인다. 이쯤 되면 시를 쓰는 일보다 사람 노릇하는 일이 더 어려운 셈이다.
하여,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차라리 ‘시가詩家’였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글이 조금 서툴러도 “아직 부족한 시가입니다” 하고 넘어갈 수 있었을 텐데, ‘시인’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괜히 더 단정해 보이려 애쓰게 된다.

또 한편으로는, 그 ‘인’이라는 글자가 마음에 든다. 시를 잘 쓰지 못해도, 적어도 사람으로 남을 수는 있기 때문이다. 문장이 모자라도 괜찮고, 표현이 서툴러도 괜찮다. 그 대신 사람으로서 조금 더 따뜻해지고,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조금 더 깊이 느낄 수 있다면, 그 또한 시인의 몫일 것이다.

‘가’와 ‘인’의 차이는 크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가’가 손으로 하는 일이라면, ‘인’은 마음으로 하는 일에 가깝다. 수필가는 글을 쓰고, 소설가는 이야기를 만들고, 시인은 살아낸다.
오늘도 나는 완벽한 문장을 쓰지 못한 채, 그저 하루를 살아낸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시인이란,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
끝까지 사람으로 남으려는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ㅡ청람 김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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