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끝이 아니라 방향이다 ㅡ청람 김왕식

미국의 국민화가 Grandma Moses의 삶






나이는 끝이 아니라 방향이다

— 그랜드마 모지스와 우리의 오늘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미국의 국민화가 Grandma Moses의 삶은 한 가지 분명한 질문을 던진다.


사람은 언제 늙는가.


그는 가난한 농가의 딸로 태어나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평생 노동 속에서 살았다. 그림은 생업이 아니라 틈 속의 숨이었다. 숯으로 벽에 그리고, 과일과 사탕 껍질로 색을 만들어 채색하던 그 소박한 손놀림은 오래도록 세상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일흔다섯, 대부분이 삶을 정리하는 나이에 그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시작한다. 그리고 백세를 넘기도록 붓을 놓지 않았다. 한때 3달러에 팔리던 그림이 훗날 상상할 수 없는 가치로 평가받게 된 것은, 재능 때문만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은 시간의 힘 때문이었다.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한국 사회에서 예순은 종종 ‘정리의 나이’로 받아들여진다. 은퇴를 기점으로 많은 이들이 스스로를 ‘이제는 물러날 사람’으로 규정한다.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음에도, 스스로 한 발 물러서며 삶의 중심에서 비켜난다.

때로는 “이 나이에 무엇을 하겠는가”라는 말이 삶을 가두는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물론 모든 이가 그렇지는 않다. 여전히 배우고, 도전하고, 새로운 길을 여는 노년의 모습도 곳곳에 존재한다. 그러나 일부는 스스로를 ‘이미 끝난 존재’로 여기는 순간, 실제로 그 삶의 가능성을 접어버리고 만다.


그랜드마 모지스의 삶은 바로 그 지점에서 하나의 조용한 반박이 된다.
나이는 능력을 결정하지 않는다.
시작의 시점을 제한하지도 않는다.
그의 붓은 늦게 들렸지만, 그만큼 오래 지속되었다. 그의 그림은 배운 기술이 아니라 살아낸 시간에서 비롯되었다. 그래서 더 깊고, 더 넓게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노년은 내려놓는 시기가 아니라, 덜어낸 것 위에 본질을 세우는 시기일 수 있다. 젊음이 속도로 나아간다면, 노년은 깊이로 들어간다. 그 깊이는 누구도 대신 만들어 줄 수 없는 삶의 결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나이를 기준으로 자신을 축소하는 태도가 아니라, 시간 위에 다시 서는 용기다.
예순 이후의 삶은 덧붙이는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자기다운 문장을 완성하는 시기일 수 있다.
늦게 피었다는 이유로 꽃이 덜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꽃은 계절을 더 깊이 이해한 뒤에야 피어난다.


그랜드마 모지스는 살짝 귀띔한다.


삶은 나이로 닫히지 않고
포기할 때 비로소 닫힌다고.



ㅡ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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