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유재영 시인 시집 《구름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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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농사
시인 유재영
일용할 이슬 몇 홉.
악기 대용 귀뚜라미 울음 몇 말,
언제고 타고 떠날 추녀 끝 초승달,
책 대신 읽어도 좋을
저녁 어스름
아,
그 집에도
밥 먹는 사람이 있어
하늘 한 귀퉁이 빌려
구름 농사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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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한 귀퉁이에서
— 절제와 여백으로 완성한 삶의 시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과잉의 시대에 이처럼 덜어낸 시는 드물다. 유재영의 시《구름 농사》는 적게 말하면서 더 깊이 닿는 언어의 가능성을 증명한다. 이 시는 무엇을 더하지 않음으로써, 외려 삶의 중심에 가닿는다.
“일용할 이슬 몇 홉”으로 시작되는 첫 구절은 이미 이 시의 결을 결정한다. 삶은 거창한 서사로 구성되지 않는다. 몇 홉의 양식, 몇 말의 소리, 한 자락 달빛이면 충분하다는 인식이 시의 바탕을 이룬다.
여기서 ‘이슬’과 ‘귀뚜라미 울음’은 물질과 정서가 구분되지 않는 상태를 드러낸다. 먹을 것과 들을 것이 같은 무게로 놓인다. 이는 삶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깊은 통찰이다.
이어지는 “추녀 끝 초승달”과 “저녁 어스름”은 시간의 가장 낮은 자리로 시선을 끌어내린다. 하루의 끝, 빛과 어둠이 겹치는 경계에서 시는 가장 또렷해진다.
책을 대신해 읽는 저녁의 기운은 지식이 아닌 체험의 언어다. 읽는다는 행위는 더 이상 활자의 해독이 아니라, 삶의 결을 받아들이는 감각으로 전환된다.
이 시의 중심은 단 한 줄에서 열린다.
“그 집에도 / 밥 먹는 사람이 있어”
이 구절은 놀라울 만큼 담백하다.
이 담백함이야말로 시의 깊이다. 존재를 증명하는 최소한의 문장,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인간은 결국 밥을 먹는 존재라는 단순한 사실이, 모든 철학적 사유를 밀어내고 자리를 차지한다.
이때 시는 인간을 거창한 존재로 높이지 않는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인간을 다시 발견하게 한다.
마지막 구절 “하늘 한 귀퉁이 빌려 / 구름 농사짓는다”는 이 시의 정점이다. 농사는 땅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다. 시인은 그 농사의 자리를 하늘로 옮긴다.
이는 현실을 떠난 환상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의 전환이다. 소유하지 않고 빌려 쓰는 삶, 채우기보다 흘려보내는 삶, 결과보다 과정에 머무는 삶이 이 짧은 문장 안에 응축되어 있다.
유재영 시인의 시적 미덕은 그의 이력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박목월에게서 시를, 이태극에게서 시조를 배운 그는 전통 서정의 깊이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것을 장식으로 소비하지 않는다.
전통의 핵심을 덜어냄의 미학으로 재구성한다. 시집과 시조집을 넘나드는 그의 작업은 형식의 확장이 아니라, 언어의 본질을 향한 지속적인 정련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시집 《구름농사》 ‘시인의 말’은 이 시를 해석하는 또 하나의 열쇠다.
“내 시가 뻐꾸기 울음보다 더 고적하지 않기를”, “내 시가 누구에게 반성문이나 고백록이 되지 않기를”이라는 문장은, 감정의 과잉과 자기 고백의 과장을 경계하는 태도를 분명히 한다.
또한 “더 크거나 작지 않기를”이라는 구절은 균형에 대한 의식이며, “적당히 울고 싶을 때 울지 않기를”이라는 표현은 감정조차 절제의 대상임을 보여준다.
이러한 시적 윤리는 《구름 농사》에서 그대로 실현된다.
이 시는
크지 않다. 그러나 정확하다.
길지 않다. 그러나 멀리 간다.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오래 남는다.
유재영 시인의 언어는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독자의 마음속에서 조용히 자리를 만든다. 그 자리는 비어 있는 듯하지만, 가장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이 시가 보여주는 것은 하나다.
삶은 많이 가지는 일이 아니라, 적게도 충분하다는 사실이다.
그 충분함을 아는 순간, 비로소 인간은 하늘 한 귀퉁이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다.
ㅡ청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