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 강문규 시인의 시집 《문풍지 우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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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문규 시인의 《문풍지 우는 소리》
― 문풍지의 울음에서 시작된 고요와 비움의 시학
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강문규 시인의 시는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문학적 기교나 새로운 언어의 실험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이번 출간한 그의 시집 《문풍지 우는 소리 ㅡ (도서출판 청랑서루 대표 김왕식)》 의 시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 삶 속에 존재해 왔으나, 제대로 불리지 못했던 장면들—문풍지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 양은 도시락의 눌린 밥, 연탄불 위에서 익어가는 꽁치, 툇마루의 나뭇결—그러한 것들에서 출발한다.
그의 시는 발견의 언어라기보다 회수의 언어이며, 창조라기보다 복원의 작업에 가깝다.
강문규 시인의 시 세계의 가장 큰 특징은 ‘낮아짐의 미학’이다. 그는 시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기보다 스스로를 한 걸음 뒤로 물린다.
그의 시에 등장하는 자연은 결코 장식적이지 않다. 산사, 노송, 달빛, 뜨락 같은 풍경은 인간의 감정을 부풀리기 위한 배경이 아니라, 외려 감정을 가라앉히고 호흡을 낮추는 장치로 작용한다. 이러한 태도는 한국 서정시의 전통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현대의 속도와 과잉 속에서 더욱 의미를 갖는다. 그의 시에서 고요는 결과가 아니라 조건이다. 고요해져야 비로소 삶이 보이고, 비워야만 비로소 마음이 드러난다.
그의 시를 구성하는 또 하나의 축은 ‘생활의 윤리’다.
특히 〈손의 온도, 살림의 서정〉에 해당하는 시편들은 강문규 시 세계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 시들에서 중요한 것은 사물이 아니라 손이다. 밥을 짓고, 찌개를 끓이고, 도리깨를 내리치고, 물동이를 지는 손. 이 손들은 단순한 노동의 도구가 아니라 삶을 지탱해 온 윤리의 근원이다. 강문규는 이 손들을 영웅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장 조용한 자리에서 가장 큰 역할을 수행해 온 존재로 그린다.
특히 어머니의 부재하는 존재감은 그의 시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중요한 정서적 기둥이다. 보이지 않지만 모든 것을 지탱하는 힘, 그것이 그의 시에서 ‘사랑’이 갖는 방식이다.
그의 시가 단순한 회상이나 향수에 머물지 않는 이유는 ‘절제’에 있다. 강문규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토로하지 않는다. 대신 사물과 장면을 통해 감정을 우회한다.
예컨대 아버지의 소줏잔, 빈 잔에 떨어진 달빛, 종착역의 고요 같은 이미지는 감정을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더 깊은 울림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독자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의 기억을 불러오게 한다는 점에서 높은 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 그의 시는 감정의 소비가 아니라 감정의 숙성에 가깝다.
또한 강문규 시인의 시는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독특한 균형을 유지한다. 〈사람 구경, 마음 구경〉에 해당하는 시편들에서 그는 일상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포착하지만, 그들을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자리싸움, 말다툼, 버르장머리 같은 장면 속에서도 시인의 시선은 따뜻하다.
그는 인간의 부족함을 드러내면서도, 그 부족함이 결국 인간의 본질임을 인정한다. 이러한 태도는 도덕적 엄숙주의와는 다른, 생활 속에서 체득된 윤리의 형태라 할 수 있다. 그의 시는 판단하지 않고, 대신 조용히 비춘다.
강문규 시인 시 세계의 궁극적 지향은 ‘비움’에 있다. 그의 시집 후반부로 갈수록 반복되는 빈 수레, 바람, 세월, 콩깍지와 같은 이미지들은 모두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그것은 덜어내는 삶이다. 그는 삶을 더 많이 쥐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이 비움은 허무가 아니라 해방이며, 체념이 아니라 성숙이다.
이러한 인식은 동양적 사유의 전통과 깊이 맞닿아 있으며, 현대인의 삶에 대한 중요한 대안적 태도를 제시한다.
강문규의 시는 한 사람의 내면적 노정이다. 고요를 세우고, 살림을 견디고, 그리움을 통과하며, 사람을 이해하고, 마침내 비움으로 나아가는 과정. 이 과정은 개인적인 체험을 넘어, 보편적인 삶의 구조로 확장된다. 그의 시는 독자를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동행한다.
그 동행 속에서 독자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잊고 있던 감각을 다시 깨우게 된다.
강문규 시인의 시는 크지 않다.
그러나 깊다. 그것은 낮은 자리에서 오래 머무른 시가 갖는 힘이다. 그 힘은 빠르게 소비되는 시대 속에서 더욱 또렷하게 빛난다.
그의 시는 귀띔한다.
삶은 요란하게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살아내는 것이라고.
그 조용함 속에서, 비로소 인간은 자신을 만난다고.
ㅡ청람 김왕식